[TRTL 201] 마음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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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4. 17.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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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사전>, 김소연

2024.04.15~16

https://youtu.be/GdoNGNe5CSg?si=o2eVDYxwtyUN50LZ

1. 26개 장별로 중요한 문장을 3개 이상 발췌해서 필사하세요.

어프로치 노트에 디아민 얼그레이. 첫사랑같은 잉크.


2. 지금 현재 나의 상황을 가장 잘 대변해 주는 단 하나의 문장을 찾으세요. 그리고 발췌한 단 하나의 문장을 선정한 근거를 제시하세요.

깊은 밤을 날아서; 이 순간에 뜬금없이 연락해오는 벗이 있다면, 그 벗에게 문장을 읽어주기도 하고, 그 벗이 그동안 나에게 얼마나 소중하게 마음속에 자리했는지 고백한다. 여태 그것도 눈치채지 못했던 벗은, 나의 고백에 눈물겹게 반가워하며 우리의 우정은 변하지 않는 금강석과 같음을 일찍이 믿어왔다고 고백한다.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어준 사람들. 매일같이 만나던 친구들은 이젠 예약과 결심 없이는 볼 수 없는 귀하고 바쁜 몸들이 되어버렸다. 매일같이 생겨나는 이야기들을 조금의 지연도 허물도 없이 곧장 쏟아내던 같은 옷차림의 친구들이 이제는 지하철을, 혹은 멀리 기차를 타고 가야하는 동네에 살아서 보고 싶어지면 늦은 밤에 전화를 한다. 서로를 위해 쌓아둔 이야기가 많아서 통화는 언제 끝나도 헛헛하고 또 보고 싶다. 가끔 재미있는 일이 생기면 나에게 말해주어야지, 생각하며 기다렸다는 말을 들으면 왜 그렇게 울컥한지. 넓고 또 한없이 얕아서 네가 참 좋다거나 소중하다는 말을 하는 게 너무 쑥스러웠던 시간들은 이미 긴 교복 치마를 펄럭이며 훌쩍 뛰어넘었다. 이제는 서로를 허물지 않으려 말을 고르고 또 고르는 모습, 또 전에 있었던 일들을 말하며 우리가 이렇게 오래 서로를 위하는 친구가 되리라는 사실을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나와 내 친구. 이 문장은 뜨끈해진 휴대폰을 볼에 댄 채 침대에 웅크려서 킥킥 웃고 킁킁 우는 새벽 세 시의 나의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3. 여러분은 이제 10대와 20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작가의 마음 묘사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장을 선정하고, 자신의 얘기를 7개의 문장으로 작성하여 제출하기 바랍니다.

질서와 의외성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프랙탈의 이론에 그대는 밑줄을 치면서도, 자신의 내면을 관장하는 질서에 대하여는 뉘우치고, 자신의 개성을 진두지휘하는 의외성에 대하여는 망설인다. 그것 때문에 언제나 난처하고 초조하다. 그대는 그래서 그대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그대를 아름답게 하는 것이 푸르게 젊은 그 육체가 아니라 그 모든 허기와 갈증임을 그대는 도통 모른다. (이십대)

23살이 되던 겨울, 이미 취직한 친구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우리는 이제 겨우 이십대의 경험을 하면서 사오십대의 여유로움이 우리의 것이길 바라는 것 같아. 그래서 초조하고 힘든 거야. 대충 그때 쯤이면 많은 게 정해지고 연륜이 생겨서 더이상 헤멜 이유도 없을 테니까.”

지금의 나는, 십대시절 전교생 앞에서 마이크를 쥐고 선생님과 싸우던 패기와 반골기질은 한풀 꺾였지만서도 아직 가슴 한 켠에서는 질서가 주는 즐거움이 께름칙하다. 그렇게 말을 고르면서도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내재화되어있는 폭력적인 어휘들과 생각들이 문득 날 뉘우치게 만들고, 내가 뭐 그리 잘났나 싶은 생각에 개성같은 건 내보일 이유도 없이 남 하는대로만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한다. 평생 특별한 줄 알았던 내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마주친 21살에는, 놀라기도 슬프기도 해서 스스로의 멍청함을 한탄하기도 했다. 허기와 갈증을 느낄 수 있는 건 아직 내가 원하는 연륜이 쌓이지 않았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고, 또 연륜을 쌓기 위해서는 허기와 갈증이 필요하기 때문에 마음껏 흔들리고 고민하고 넘어져보라는 말들은 머리로는 알지만 아직도 무섭다. 그래서 보조 바퀴를 뗀 자전거를 밀어주던 누군가가 손을 뗐음을 알아차리는, 그 뒤돌아보는 순간처럼 다른 사람들로부터 얹어지는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버지니아 울프도 마흔 살이 되어서야 자신이 칭찬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란 확신을 받았다고 하던데 내 마흔살은 어디쯤 기웃거리고 있는지, 오기는 할런지 궁금하다.

김나동
김나동 문학·책

김치나베동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