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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성원성 작성일26-11-02 18:41 조회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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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내리는 토요일 오후, 젖은 도로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잠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일상의 바쁨과 고단함에서 한 걸음 물러나고 싶은 날, 용호동 다옴카페 한편에 독서클럽창원 회원 다섯 명이 둘러앉았다. 10월 정기모임의 책은 김애란의 산문집 <그랬다고 적었다>였다. 그랬다고 적어 두는 일. 그것은 우리가 한때 그곳에 머물렀고, 누군가를 사랑했으며, 세상의 어느 한순간에 온 마음을 내어주었다는 사실을 되새기는 일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도 누군가의 시선으로 기록되는 순간 오래 간직할 이야기로 남는다. 지나간 삶을 기록해 기억을 지키고, 부모님과 타인의 이야기를 헤아림으로써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히는 것, 이 책은 글쓰기가 지닌 의미를 일깨워 주었다. 두 시간 남짓 책 속 문장과 토론 주제를 따라가며 우리는 각자의 삶을 꺼내 놓았다. 누군가에게는 오래 묻어 둔 기억을 불러오는 질문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마음을 대신 전해 주는 문장이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한 문장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마음을 나누는 동안 우리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느꼈다. 아버지를 인터뷰한 첫째 날 밤, 나는 아버지에게 '생애 첫 기억'을 물었다. 아버지는 바닷가에서 할머니를 기다린 게 최초의 기억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각각 논과 바다로 일을 나간 부모님을 기다리며 종일 집에 혼자 있었다. 그러다 무슨 마음에서였는지 바다로 조개 캐러 나간 할머니를 찾아 작은 발로 먼 길을 헤쳐 나갔다. -그런데 저기 바다에서 엄마가 나를 보셔. 그게 최초의 기억이야. (77면) 이 문장을 읽으며 토론 주제였던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순간은 언제인가? 부모님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무엇이며, 그 기억은 지금의 나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한참을 머물렀다. 아득한 기억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자 중학교 3학년, 열여섯 살이던 어느 날 밤이 떠올랐다. 아직 아버지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지 못했던 나에게 아버지는 늘 가족을 지켜주는 단단한 사람이었다. 바다이야기 사건 세차장과 자동차 정비업을 일구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아버지에게 사업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흘린 땀과 노력으로 일군 삶의 터전이자 가장으로서의 자부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무보험 트럭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아버지의 모든 것이 흔들렸다. 네 달간의 입원과 치료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아버지는 자신이 일구어 온 사업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했다. 그리고 술에 취해 돌아온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다. 김현승의 시 '아버지의 마음'에 나오는 구절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어린 나에게 아버지의 눈물은 낯설고 당혹스러웠다. 늘 강하고 든든하던 아버지도 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지만 중년이 된 지금, 그날의 눈물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평생 일구어 온 삶의 터전을 내려놓아야 했던 막막함,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차마 털어놓지 못했을 외로움, 무너지는 마음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다시 가족의 삶을 책임져야 했던 한 남자의 무게가 그 눈물 속에 담겨 있었으리라. 어린 시절의 나는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지만, 이제는 그 눈물에 담긴 아버지의 삶을 읽는다. 아버지라는 이름 뒤에도 지키고 싶은 자부심이 있었고, 감당하기 어려운 상실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는 여린 마음이 있었다. 어쩌면 강하다는 것은 한 번도 울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는 순간에도 자신이 지켜야 할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며 다시 일어서는 일이었을 것이다. 오래전 아버지가 흘린 눈물은 이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다. 그것은 내가 살아오며 마주한 크고 작은 삶의 무게와 포개지면서, 비로소 이해의 깊이를 더해 가는 기억이 되었다. 아버지로 살아온 아버지의 마음을 되짚어 보며, 나 역시 어느새 삶의 무게를 제법 알게 된 중년의 문턱에 서 있음을 실감한다. 바다이야기다운로드 50대에 들어선 지금, 가장으로서 짊어진 책임과 학교 선생님으로 살아가는 일상의 분주함과 고단함이 가끔은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의 자식으로,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로 살아가며 감당해야 하는 몫이 있고, 친구와 선후배로 맺어 온 관계 속에서 지켜야 할 마음과 도리가 있다.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으려 애쓰다 보면 정작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에는 인색해지곤 한다. "타인에게 실망하고, 타인을 지겨워하면서도, 타인을 그리워하는 요즘, 오랜만에 타인을 만나 '고작 이런 거였나?'하고 허무해하고, 다시 타인 덕에 일어서고, 타인에게 배워나가는 날들…" (179면) 때로는 사람에게 실망하고 관계에 지치기도 하지만,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 또한 사람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되새긴다. 나를 지치게 하는 것도 관계이지만, 나를 위로하고 성장하게 하는 것 역시 관계다. 그렇기에 지금 내 곁에 머무는 인연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순간들, 그리고 아직 내 안에 고스란히 품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함부로 흘려보내지 않고 오래도록 아끼며 살아가고 싶다. 표지에 적힌 책 제목 <그랬다고 적었다>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그랬다'라는 말을 내 마음에 맞는 다른 말로 바꾸어 본다. '마음이 울적하다', '힘들다', '외롭다'. 그러다가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다시 한번 힘내자'라고 적어 본다. 같은 하루를 살아가면서도 내 마음을 어떤 말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의 풍경은 조금씩 달라진다. 울적한 마음을 인정하고, 힘들고 외로운 나를 다독이며, 지나가는 시간의 힘을 믿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내어 본다. 모든 것을 잘해내야 한다는 마음의 짐을 조금은 내려놓고, 때로는 부족해도 괜찮고 잠시 쉬어 가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싶다. 나를 믿고 곁을 내어준 사람들, 함께 웃고 울었던 시간들, 무심히 건넨 말 한마디에 깃든 따뜻한 마음을 오래도록 품고 살아가려 한다.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려 애쓰기보다 내 곁의 소중한 인연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아끼고 지키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채워 가려 한다. 관계는 서로의 완벽함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마저 기꺼이 품어 주는 마음으로 깊어지고 오래도록 이어지는 것이기에…. 모바일 손오공게임장 해야 할 일과 책임 사이를 분주히 오가느라 정작 내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었던 날들. 김애란의 산문집 <그랬다고 적었다>는 서두르던 마음에 작은 쉼표 하나를 놓아 주었다. 가을날 한 권의 에세이를 읽는다는 것은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의 흔적을 따라 잠시 걸음을 늦추는 일이다. 작가가 바라본 풍경과 마음의 결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나와는 다른 삶의 온도를 헤아리고,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내 마음의 풍경과도 마주하게 된다. 책을 읽는 시간은 세상을 향해 내어주었던 마음을 잠시 거두어, 다시 나 자신에게 돌려주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흐트러진 마음을 가만히 추슬러 보면, 어제와 다르지 않은 일상일지라도 내일을 다시 살아갈 작은 온기와 힘이 마음속에 차오른다. 책모임이 끝나고서도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을비가 풍경을 적시는 동안 우리는 김애란의 에세이로 서로의 마음을 적셨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에세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잠시 같은 마음이 되어 보는 일. 비 오는 가을날, 우리가 함께 보낸 두 시간은 그렇게 평범한 오후를 오래 기억하고 싶은 한 페이지로 바꾸어 놓았다. 그렇게 토요일 오후는 빗소리와 책 이야기, 그리고 사람의 온기로 저물어 갔다. △EBS <다큐프라임> '파더 쇼크 3부 - 아버지로 산다는 것'(2013년 6월 12일) △MBC <손석희의 질문들> '우리는 왜 김애란을 읽는가'(2026년 4월 20일) ◇추천하고 싶은 책 △김애란 산문 <잊기 좋은 이름>(문학동네·2026년) △하라카와 다이스케 <아빠가 치매에 걸리면 이렇게 해 주렴>(소보랩·2026년) /서헌 창녕 영산고 교사 ☞ 필자는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은 약한 존재이지만 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장 강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임을 인식하는 관계를 지향하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해 이해하는 '문학', 그리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살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들여다보는 '역사'를 꾸준한 책읽기를 통해 심어주자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0070c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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