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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성원성 작성일26-10-26 13:03 조회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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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대표하는 음악교육기관인 파리 국립고등음악무용원(Conservatoire national supérieur de musique et de danse de Paris, CNSMDP)[1]이 학생들에 의해 봉쇄됐다. 3주째 프랑스 전역에서 이어지고 있는 고등학생 시위에 연대하기 위해서다.
10월 12일, 파리 19구 장 조레스 대로의 음악원 출입구가 막혔다. 학교 앞에는 피켓이 내걸렸다. ‘Clé de Fa! Pas Clé de Bras!’ 낮은음자리표는 좋지만 팔을 꺾는 제압 기술은 싫다는 뜻이다. ‘Anti Fa!’는 음이름 ‘파’에 반대한다는 말에 반파시즘(antifa)을 겹친 말장난이다. 음악 용어를 비튼 재치 있는 구호들이지만, 그 안에 담긴 요구는 가볍지 않다.
파리 음악원 학생들이 만든 시위피켓. '안티 파'는 반파시즘을 의미한다. © 소명섭
학생들은 고등학생 시위에 대한 연대와 함께 경찰의 강경 진압을 규탄하고, 교육·문화 예산 삭감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노후 시설과 석면 문제, 인력 감축, 피아노 반주자들의 노동조건 등 음악원 내부의 요구도 함께 내걸었다.
이번 시위의 진원지는 파리가 아니다. 9월 중순 파리 남동쪽 크레테유에서 교사 부족에 항의하며 시작된 고등학생들의 움직임은 곧 파리 북쪽 외곽의 센생드니로 번졌다. 프랑스 본토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꼽히는 곳이다. 학생들의 분노는 구체적이다. 몇 달째 채워지지 않는 교사 자리, 과밀 학급, 낡은 교실, 대학 입시의 압박. 생드니에서 만난 한 고등학생은 교실에 앉을 의자조차 모자란다고 했고, 같은 지역의 한 교사는 학교에 쥐가 나온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거리로 나온 학생들에게 돌아온 것은 강경한 진압이었다. 변호사들이 나서서 고등학생들에 대한 경찰 폭력을 고발할 정도였고, 10월 6일까지 체포된 사람은 6,500명을 넘었다.
같은 시각, 파리 19구 라빌레트의 음악원 내부는 전혀 다른 세계다. 문화부가 직접 운영하는 국립기관으로, 엄격한 선발을 통과한 소수의 학생들이 개인 레슨과 연습실, 학교 안의 공연장에서 세계 정상급의 교육을 받는다. 물론 이곳에도 노후 시설 문제는 있다. 그러나 앉을 의자와 내려앉는 천장의 보수를 요구하는 생드니의 고등학교 앞에서, 음악원의 낡음은 아무래도 같은 무게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런데 바로 그 음악원의 학생들이 거리로 나왔다. 의자가 모자란 교실의 분노에, 프랑스에서 가장 좋은 환경에서 음악을 배우는 학생들이 응답한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공명’이라고 표현했다.
‘공명’하는 울림판이 되겠다는 학생들
“우리는 고등학생들의 목소리를 위한 울림판(caisse de résonance)이 되고자 합니다.”
왜 학교를 봉쇄했느냐는 질문에 학생들이 내놓은 대답이다. 울림판은 악기의 작은 진동을 받아 더 크게 울리게 하는 열린 통이다. 기타의 속 빈 몸통이나 바이올린의 몸체가 그렇다. 줄 하나의 가냘픈 떨림은 이 통 안에서 공기 전체의 울림이 되어 비로소 멀리까지 들린다. 프랑스어에서 이 말은 타인의 목소리나 주장을 사회로 퍼뜨리는 역할을 가리키기도 한다.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행동을 이 단어로 설명했다. 자신들이 이 시위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이미 거리에서 외치고 있는 고등학생들의 목소리가 더 멀리 울리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움직임은 음악원만의 일이 아니다. 10월 14일 자 르몽드는 상트랄쉬펠렉(CentraleSupélec)을 비롯한 공학계 그랑제콜[2] 학생들이 고등학생 시위에 합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자신들의 교육 환경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고등학생들이 제기한 불평등 문제에 연대하고 있다.
파리 음악원은 고등학생의 시위에 연대하기 위해 학교를 봉쇄했다. © 소명섭
“우리가 특권적 위치에 있다는 걸 압니다”
예술가로서 왜 정치적 운동에 나서느냐고 묻자, 음향 엔지니어링을 전공한다는 한 학생이 답했다.
“우리는 이 기관이 어떤 면에서 특권적인 위치에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바깥으로 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옆에 있던 학생이 말을 보탰다. “음악원 학생들도 세상에 관심이 있고, 다른 대학생이나 고등학생들과 똑같은 문제를 고민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음악원에 덧씌워진 보수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이미지를 깨고 싶다는 것이다.
프랑스 음악교육 정책을 연구해 온 정치학자 노에미 르페브르(Noémi Lefebvre)는 음악교육의 민주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완벽함을 가치로 삼는 태도’와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부재’를 꼽은 바 있다. 2008년 프랑스 상원 예술교육 보고서에도 인용된 이 논의는, 교육이 완성된 결과와 전문 기량에만 매달릴 때 함께 음악을 빚어가는 경험 자체가 밀려난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3]. 이를 오늘의 음악원에 비추어 보면, 학생들이 깨고 싶다는 것도 결국 완벽함만을 좇는 교육이 음악가를 바깥 세계로부터 떼어놓고, 그 단절이 특권의식과 배타적 위계로 굳어지는 구조일 것이다.
이름 없는 목소리
한편, 인터뷰를 요청하자 학생들은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발언은 기사에 실어도 좋지만, 이름과 얼굴이 담긴 사진은 쓰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개인적으로는 답할 수 없다고 했다. “모든 건 함께 정합니다. 매일 모여서 이야기하고 있어요.”
경찰의 진압과 예산 삭감, 음악원의 엘리트주의를 말할 때 그들의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목소리는 내어주되 얼굴은 내어주지 않는 것. 그 조심스러움에서 음악원이라는 보수적인 울타리의 흔적이 읽혔다. 정해진 규범 안에서 실수 없이 연주하도록 단련되어 온 사람들, 잃을 것이 적지 않은 자리에 선 사람들의 몸에 밴 신중함 같은 것이었다. 거리의 언어를 빌려 말하면서도 그들은 끝내 한 걸음 물러선 자리에서 말하고 있었다.
다만 인상적인 것은 그들이 그 사실을 모르거나 부인하지 않았다는 .이다. 특권적인 위치에 있다는 고백은 인터뷰 내내 형태를 바꿔 되돌아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고 있었고, 그 자리가 만든 습관을 스스로 의심하고 있었다. 울타리 밖으로 손을 뻗으려는 그들의 노력은 서툴지언정 진지해 보였다.
파리 음악원 벽에 붙은 시위 피켓들 © 소명섭
그러고 보면 음악원은 이름으로 평가받는 공간이다. 콩쿠르 결과표에도, 연주회 프로그램에도 연주자의 이름이 또렷이 새겨진다. 그런 곳에서 자라온 학생들이 거리의 시위에서는 자기 이름을 내려놓고 합창의 한 목소리가 되기를 택했다. 그것이 신중함인지 용기인지, 혹은 둘이 뒤섞인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말해야 한다는 마음과 드러나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를 오가는 그 망설임 자체가, 이 세대가 공적인 목소리를 배워가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혁명이 낳은 학교, 1968년의 균열
파리 음악원은 1795년 프랑스 국민공회가 기존 음악교육기관들을 통합해 세운 학교다. 궁정과 교회, 오페라에 흩어져 있던 음악교육을 공화국의 제도 안에 새로 짜려는 시도였고, 국가 축제에 참여하는 공적 임무도 함께 주어졌다. 혁명에서 태어난 이 기관은 이후 프랑스 음악계의 권위와 전통을 상징하는 최고 교육기관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엄격한 선발과 경쟁, 예술적 위계도 함께 자라났다.
그 권위에 처음 크게 금이 간 것이 1968년 5월 , 바로 68혁명이다. 대규모 시위에 나선 음악원 학생들[4]은 “구노는 그만, 크세나키스를!(Plus de Gounod, du Xenakis!)[5]"이라고 쓴 현수막을 들었다. 19세기 낭만주의 오페라의 작곡가 구노 대신 그리스 출신 전위 작곡가 크세나키스를 달라는 이 구호에는, 낡은 교육과 미학을 함께 뒤집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5월 19일 학생총회는 수업거부를 의결했고 음악원은 .거됐다. 레몽 갈루아몽브룅 원장은 대화를 거부한 채 관사에 틀어박혀 한 달 가까이 나오지 않았다. 5월 22일 극우 단체 옥시당(Occident)이 음악원을 습격해 학생들을 다치게 하자, 머뭇거리던 교수들도 학생들 곁으로 돌아섰다. 바이올리니스트 이브리 기틀리스[6]는 학생들에게 구호 대신 악기를 들라고 권했고, 이들과 함께 .거된 대학과 파업 중인 공장을 찾아다니며 연주했다.
1968년 5월 28일, 프랑스 파리 오데옹 극장을 .거한 학생들. 당시 오데옹 극장은 5월 혁명 기간 정치적 토론과 집회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Photo: Eric Koch / Anefo | 출처: Nationaal Archief [CC0 1.0]
르페브르는 이 시기 음악원 학생들이 스승을 따르는 ‘제자’에서 교육기관의 미래를 논하는 ‘학생’으로 스스로를 다시 인식했다고 설명한다. 변화는 실제 제도로 이어졌다. 그해 가을부터 교수와 학생이 같은 수로 참여하는 40명 규모의 위원회가 학교 운영과 교육 내용, 교수 채용까지 맡았고, 이 방식은 1984년까지 유지됐다. 1968년 11월 13일 자 르몽드에 따르면 장학금 예산도 두 배로 늘었다. 피에르 셰페르가 이끌던 음악연구그룹(GRM)[7]과의 연계로 전자음향 음악이 본격적으로 교육과정에 들어온 것도 이 무렵이다. 저항은 학교의 운영 방식을 넘어 무엇을 음악으로 가르칠 것인가라는 질문에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58년이 흘렀다. 이제 학생들이 묻는 것은 달라졌다. 1968년의 학생들이 음악원 내부의 체제와 권위에 맞섰다면, 2026년의 학생들은 음악원이 바깥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저항의 방향이 안에서 밖으로 돌아선 셈이다.
웃음과 노래, 그리고 울림판
프랑스혁명기의 시민 노래에서 19세기 노동운동의 합창, 68년 거리의 구호에 이르기까지, 음악은 늘 집단행동의 곁에 있었다. 그것은 단지 메시지를 실어 나르는 도구가 아니었다. 무기도 권력도 갖지 못한 이들에게 풍자와 노래는 권력 앞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이었다.
프랑스는 그 전통이 유난히 깊은 나라다. 17세기 중반 프롱드의 난 동안 파리에는 대부분 재상 마자랭을 겨냥한 풍자시와 팸플릿, 노래가 수천 편 쏟아졌고, 이를 ‘마자리나드’라 불렀다. 권력은 거리의 노래까지 금지하려 했지만 노래는 입에서 입으로 퍼졌다. 프랑스혁명기의 문필가 니콜라 샹포르[8]는 어느 재치 있는 인물이 프랑스의 통치체제를 ‘노래로 누그러뜨려지는 절대왕정’이라고 표현했다고 기록했다. 왕의 권력이 아무리 절대적이어도 그것을 비웃는 노래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는 뜻이다.
정치인류학자 제임스 C. 스콧[9]은 왜 약자들이 이런 방식을 택하는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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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약자의 무기(Weapons of the Weak)』(1985)와 『지배와 저항의 기술(Domination and the Arts of Resistance)』(1990)에서 지배는 결코 완전하지 않으며, 피지배자들은 일상의 전략으로 그 지배를 피하거나 누그러뜨린다고 보았다. 소문과 험담, 은유, 카니발처럼 세상을 뒤집어 보이는 상상은 하위 집단이 분노를 다스리고 존엄을 지키면서도 보복에는 크게 노출되지 않는 ‘숨겨진 대본(hidden transcript)’이 된다는 것이다. 노래와 농담은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가려내기 어렵고, 여럿이 함께 부르는 순간 누구의 것도 아니게 된다. 그 익명성이 곧 보호막이다.
물론 오늘날의 파리 음악원의 학생들은 스콧이 말한 약자와는 거리가 멀다. 스스로 인정하듯 그들은 프랑스 음악교육의 가장 높은 자리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그들은 이 저항의 주인공을 자처하지 않았다. 거리에서 먼저 목소리를 낸 것은 고등학생들이었고, 음악원 학생들은 스스로를 그 목소리의 울림판이라 불렀다. 소리를 처음 만들어내는 자리가 아니라, 이미 울리고 있는 소리를 받아 더 멀리 보내는 자리를 택한 것이다.
울타리 밖에서 다시 배우는 음악
그렇게 보면 파리 음악원의 학생들은 지금 울타리를 벗어나 음악의 본질을 다시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음악원 안에서 음악은 완성된 결과로 평가받는다. 실수 없는 연주, 정확한 음정, 결과표에 새겨지는 이름. 르페브르가 ‘완벽함을 가치로 삼는 태도’라고 부른 것이다. 거리의 음악은 다르다. 그곳에서 음악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누구의 것도 아닌 익명의 목소리들이 부딪히며 불협화음을 내고, 구호와 소음이 뒤엉켜 혼란을 빚는다. 1968년 기틀리스가 학생들에게 말 대신 악기를 들고 나가 연주하라고 했을 때, 그가 가리킨 곳도 바로 그 혼란의 한가운데였을 것이다. 58년이 지난 오늘, 음악원의 학생들은 그 말에 실천으로 응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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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위가 실제로 어떤 제도적 변화를 낳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봉쇄에 동의하지 않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고, 예술적 연대가 언제나 정치적 성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젊은 음악학도들이 잠시나마 연주자의 자리에서 내려와 듣는 사람의 자리에 섰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음악은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 일만이 아니다. 이미 있는 소리를 듣고, 응답하고, 때로는 그 소리가 더 멀리 가도록 울려주는 일이기도 하다. 파리 음악원의 학생들은 지금 그 가능성을 거리에서 시험하고 있다. 연주자이기 이전에 타인을 고통을 듣는 청취자로서. 자신의 소리가 아닌,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위한 울림판으로서.
파리=김은진 칼럼니스트
[1] 파리 국립고등음악무용원(CNSMDP) : 1795년 설립된 프랑스의 국립 고등예술교육기관이다. 문화부의 감독을 받으며 음악, 무용, 음향기술 등의 전문교육을 제공한다. 프랑스에는 파리와 리옹에 각각 국립고등음악무용원이 있다.
[2] 그랑제콜(Grandes Écoles) : 프랑스의 일반 대학과 구별되는 고등교육기관군으로, 대체로 경쟁적인 선발과 전문교육을 특징으로 한다. 공학, 경영, 행정 등 다양한 분야에 존재하며, 프랑스 엘리트 양성체계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상트랄쉬펠렉(CentraleSupélec)은 파리사클레대학교와 연계된 대표적인 공학계 그랑제콜이다.
[3] 노에미 르페브르의 음악교육 민주화 연구 : 프랑스 상원, 카트린 모랭데자이(Catherine Morin-Desailly), 『예술교육의 지방분권화: 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 제언』(Décentralisation des enseignements artistiques : des préconisations pour orchestrer la sortie de crise) 보고서는 정치학 연구자 노에미 르페브르(Noémi Lefebvre)의 논의를 인용해, ‘완벽함을 가치로 삼는 태도’와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부재’가 음악교육의 민주화를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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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Noémi Lefebvre, 「Mai 1968 au Conservatoire National Supérieur de Musique」(「1968년 5월,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서」), 2008.
[5] 구노와 크세나키스 : 샤를 구노(Charles Gounod, 1818~1893)는 오페라 《파우스트》 등으로 알려진 프랑스 낭만주의 작곡가다. 이아니스 크세나키스(Iannis Xenakis, 1922~2001)는 그리스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작곡가이자 건축가로, 수학적 모델과 확률적 작곡기법을 활용한 전위음악으로 알려져 있다. 두 작곡가의 대비는 전통적인 음악교육과 현대적 실험음악 사이의 긴장을 상징한다.
[6] 이브리 기틀리스(Ivry Gitlis, 1922~2020)는 이스라엘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다. 클래식 음악계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연주 활동으로 알려졌으며, 1968년 5월 혁명 당시 학생들과 연대해 음악을 연주한 인물로 언급된다.
[7] 피에르 셰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는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음향 연구자로, 구체음악(musique concrète)의 선구자다. 1958년 프랑스 방송기관 내에 음악연구그룹(Groupe de recherches musicales, GRM)을 설립했다. 구체음악은 녹음된 소리를 작곡의 재료로 삼아 전통적인 음표와 악기 중심의 음악 개념을 확장했다.
[8] 니콜라 샹포르(Nicolas Chamfort, 1741~1794)는 프랑스혁명 전후에 활동한 작가이자 풍자가이다. 저서 『격언, 사상, 인물 묘사와 일화』(Maximes, Pensées, Caractères et Anecdotes, 1796, p. 214)에서 프랑스의 통치체제를 ‘노래로 누그러뜨려지는 절대왕정’이라고 표현한 익명의 인물의 말을 기록했다.
[9] James C. Scott, Weapons of the Weak: Everyday Forms of Peasant Resistance, Yale University Press, 1985. 스콧은 말레이시아 농촌사회의 연구를 통해 공개적인 반란이나 조직적 시위뿐 아니라 소극적 불복종, 회피, 험담 등 일상적인 행위도 지배에 대한 저항의 형태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면서도 그들은 끝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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