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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성원성 작성일26-10-25 17:59 조회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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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수산대학 교수 시절에 실습선 위에서 마도로스 포즈를 잡은 한흑구. /한동웅 제공 이론과 작품을 겸비해 ‘시적 수필’이라는 독창적 지평을 열어놓은 한흑구는 그와는 전혀 딴판으로 젊은 시절의 기백을 되살려 긴 소설도 집필한다. 1956년부터 1957년에 걸쳐 포항시 남빈동의 늙고 낡은 집에서 ‘농민생활’에 장편소설 ‘마을을 내려다보며’를 연재했다. 미국 유학을 접고 평양으로 돌아온 스물예닐곱 살 젊은 시절, 1935년부터 1936년까지 ‘농민생활’에 장편소설 ‘사형제’를 연재한 적 있었으니 포항에서 쓴 작품은 같은 잡지에 두 번째 발표한 장편소설로 남는다. ‘마을을 내려다보며’의 주인공 문철주는 1950년대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농촌마을 삼치골에서 미국의 농민 잡지를 읽으며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농촌’을 건설하려는 꿈을 간직한 인물이다. 미국 농장의 시설을 그림으로 볼 때마다 “잠을 잘 수가 없을 지경”으로 동경한다. “농사짓기도 돼지치기도 다 과학적으로 연구를 해서” 시행하는 미국과 똑같이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고 싶은 욕망에 들려 있다. “땅은 좁고, 농민은 많고, 먹을 것도 적으니 어떻게 해야 우리가 살아나갈” 것인가. 문철주의 생각은 확고하다. “우리나라에는 무엇보다 농촌의 현대화 과학화가 절대로 요망되고 있습니다. 현대에 있어서 모든 나라가 공업시대를 걷고 있지만, 공업의 원료를 제공하는 것도 농촌입니다. 미국 같은 나라는 공업의 원료를 원활하게 제공할 뿐만 아니라 식량은 몇 해를 두고 먹어도 부족함이 없을 잉여 양곡 때문에 곡가 조절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형편이 아닙니까.” ‘마을을 내려다보며’는 전후(戰後)의 빈핍에 시달리며 봄날에는 잔혹한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는 민중적 현실을 직시하는 가운데 시대의 어둠이 하루빨리 걷히고 나라의 새벽이 열리기를 갈망하는 한흑구의 고뇌를 투영한 계몽소설인 것이다. 문철주의 꿈은 오늘날 우리 농업에 실현돼 있다. 포항수산대학이 발급한 한흑구 정교수 사령장. /한동웅 제공 어느 날 포항 남빈동 자택의 한흑구 가족. /한동웅 제공 한흑구가 ‘마을을 내려다보며’ 연재를 마쳤다. 이듬해(1958년) 봄날에는 포항고등학교를 6회로 졸업한 장남(한동웅)이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고, 그는 포항수산초급대학 교수(전임강사)로 초빙되었다. 부교수 신분을 거쳐 1964년에는 정교수 사령장도 받는다. 바다이야기 기계 가격 교육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환경이 열악했던 전후 포항에서 그래도 한흑구를 알아보는 유력인사들 중 한 사람이 하태환이었다. 일제강。기에 시인 정지용과 함께 일본 동지사대학을 유학한 하태환은 당시 포항의 국회의원으로 동지교육재단 학교들과 포항수산초급대학을 설립한 인물이다. 한흑구는 걸어서 출근한다. 집에서 나와 동빈내항을 따라 죽도시장을 거치고 송도로 이어주는 ‘검둥다리’(콜타르를 칠한 나무다리)를 건너 숲길 같은 인도를 걸어가면 송도 해변과 가까운 2년제 포항수산대학이었다. 여기서 그는 선진 어업과 원양 어업을 개척해나갈 청년들에게 교양 영어와 문학을 가르치고 ‘포항수산대학학보’도 창간한다. 이 학보에 남은 한흑구의 수필 ‘가을하늘 같이’(1963년)에는 몇 년 뒤 그가 주도해 조직하는 조그만 문학단체 ‘흐름회’의 그 ‘흐름’이라는 이름을 예상케 해주는 문장이 담겨 있다. <어쩌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 하늘가로 지나가는 이름 모를 새 소리를 들을 때에는 가슴속이 구슬퍼지기도 한다. 흘러가는 소리, 그것은 흘러가는 인생과도 같다. 혹은 인생을 불러 가는 하느님의 말씀인지 모르겠다.> 동해면행정지원센터 앞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시비’. /네이버 카페 포항 ‘청포도’ 다방 앞의 흐름회 회원들(오른쪽 세번째가 한흑구, 맨 오른쪽 손춘익). /한동웅 제공 ‘흐름회’ 창립 취지를 담은 한흑구의 육필. /한동웅 제공 윗글의 ‘흘러가는’은 어쩐지 셰익스피어의 말을 닮았다. 실제로 1967년에 한흑구는 ‘흐름회’라는 작명을 하는 시간에 그 ‘흐름’을 “인생은 흘러가는 그림자와 같다”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에서 빌려온다. 1960년대에 들어선 무렵부터 그가 포항에서 문학 중심의 문화운동을 일으키는 데 앞장섰으니, 이것이 흐름회로 탄생하기까지는 대강 일곱 해쯤 걸렸다고 볼 수 있겠다. 한흑구가 포항에서 맨 먼저 말벗, 술벗으로 사귄 이는 김대정이었다. 1970년대에 포항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이는 누구나 ‘코주부사’를 기억할 것이다. 그가 운영한 가게였다. 김대정은 일제강.기 1930년대 후반기에 포항에서 휴양하던 시인 이육사를 동해면 삼륜포도원(지금의 포항비행장 일대) 포도농장으로 모시는 자리에 함께한 적도 있었고, 이때 시 ‘청포도’를 착상했다는 이육사의 엽신을 읽어본 일도 있었다. 빠칭코 이러한 사연을 바탕으로 전후 포항에는 ‘청포도’ 다방이 생겨났고, 김대정의 이야기를 한흑구가 수필로 옮겨놓음으로써 현재 동해면 행정지원센터 앞에는 이육사의 ‘청포도 시비’가 모셔져 있다. <그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하였다. “옛날 육사가 이곳에 친구들이 많아서 삼사 개월씩 놀다 갔는데, 저기 저 종합제철 뒤에 있는 고갯마루에 일본 동척회사가 경영하던 동양 최대 포도밭이 있었어. 미츠와(三輪) 포도주를 만들어서 일본으로 가져갔고, 해방 후엔 마라톤 포도주라는 상표를 붙여서 팔았지 않았나. 바로 그 포도 농장에 놀러 다니면서 얻은 소재의 시야. 저기 보이는 저 언덕 위에 오십만 평도 더 되는 농장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면 바다가 앞뜰 모양으로 속속들이 내려다보여.” (중략) 전쟁 때 미 해병 제1항공사단이 농장 전부를 항공기지로 사용하다가 돌아갈 때는 한국 해병대에 넘겨주었다. 우리 해병대에는 항공대가 없기 때문에 비행장은 KAL기들이 사용하는 현재의 포항공항이 되었다. 이 비행장은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인들이 소규모로 만들었던 것이다.> 1973년 10월호 ‘시문학’에 실린 한흑구의 수필 ‘이육사의 청포도’ 일부분이다. 맨 앞의 ‘그’는 대구에서 포항으로 놀러온 도광의 시인이다. 이 수필은 한흑구가 손춘익의 친구인 도광의에게 얘기해주는 형식인데, 한흑구 김대정 손춘익 도광의 등이 어울린 술자리는 포항 송도해수욕장이다. 포항비행장과 그 지형지물에 대해서야 누구보다 한흑구가 자세히 알고 있었다. 전쟁 때 부산 피난 생활을 마치고 포항으로 돌아온 그를 미군이 ‘K3’라 부른 그곳의 통역관으로 모셔갔으니. <대한의 새벽날이 밝아 새는 이 고장 형산강 흐름 끝에 송도 명사 고와서 동해의 고기떼가 모여드는 영일만 갈매기 흥겨워서 파도 곁에 춤춘다> 1980년대 중반까지 불린 ‘포항시민의 노래’ 첫 절이다. 한흑구는 저 가사를 높이 보았다. 영일만 포항의 풍광을 시적 품격으로 잘 표현한 것이라 여겼다. 작사자는 이명석으로, 한흑구보다 다섯 살 위다. 타고난 그림 소질을 살려 간판。을 생업으로 삼는 이명석은 전후 고아들의 보금자리인 보육원을 꾸려나가는 한편으로 김대정, 박영달과 함께 포항에도 문학이 살아나야 한다며 전전긍긍 뜻을 펼치는 중이었다. 이러한 시기에 한흑구의 출현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들이 모여 앉는 단골 공간이 ‘청포도 다방’이었다. 1961년에는 포항문인협회도 만들었다. 서울의 한국문인협회와는 상관없었다. 동영상황금성 그렇게 척박한 땅에 뿌려놓은 문학의 씨앗이 제대로 싹을 틔우고 묘목으로 올라오는 때는 1966년 새해부터 1968년 새해까지 이태 동안이었다. 포항으로서는 문학적 경사도 이어졌다. 한흑구의 수필 ‘보리’가 1966년 새 학기부터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다. 해방 후 정부가 처음 만든 중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나무’에 이어 두 번째였다. 그의 포항수산대학 제자이며 초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시작한 손춘익(1940~2000)이 1966년 조선일보,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됐다.(같은 해에 도광의는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다.) 한흑구는 축배를 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이명석은 손춘익을 얼싸안았다. 1968년에는 전남 장흥 출신으로 포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김녹촌이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 당선됐다. 김녹촌과 손춘익은 1969년 ‘소라가 크는 집’이라는 공저를 펴낸다. 마침내 때가 됐다고 판단한 한흑구는 포항의 문학운동에 두 소매를 걷어 올렸다. 새로운 구심。부터 만들었다. 1967년에 출범한 ‘흐름회’가 그것이다. 기존 포항문인협회 회원들이 주축이고 새 활력소는 김녹촌, 손춘익이었다. 포항 출신으로 1958년 동아일보,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던(뒷날에 동시와 시조로 나아감) 박경용도 이름을 보탰다. 나이로는 한흑구가 회갑을 눈앞에 두었고, 김녹촌이 사십대에 들었고, 서른 살에 못 미친 손춘익은 한흑구의 차남과 또래였다. 하지만 ‘은둔과 사색의 검은 갈매기’는 ‘진실로 문학을 하겠다’는 사람에게는 노소(老少)를 불문에 부쳤다. 문학의 이름으로 글벗이요 말벗이요 술벗이었다. 2026년 현재 회갑을 넘어 일흔 고개를 바라보는 포항 출신 지식인의 상당수는 1970년대 흐름회 주최 백일장을 추억할 수 있다. 송도해수욕장 앞 솔숲 속 포항수산대학 교정에서 열렸다. 상장이라도 받으면 그 소중한 인쇄물에는 국어책에서 만났거나 만나게 되는 ‘보리’의 한흑구가 ‘흐름회 회장’으로 박혀 있었다. 김녹촌·손춘익 공저의 ‘소라가 크는 집’, 이 책의 포장지에는 ‘상품’이란 인장이 찍혀 있었고···. 명리(名利)를 멀리하며 포항에서 고요히 흘러가는 한흑구에게는 그냥 보고 싶고 그냥 얘기하고 싶고 그냥 술잔을 나누고 싶어서 찾아오는 지기지우(知己之友)의 두 문우가 있었다. 서로가 오거니 가거니 하며 자주 만난 문우는 1955년 봄날부터 1962년 봄날까지 이웃 경주에 머물며 경주고등학교와 경주여자중고등학교 교장으로 지낸 청마 유치환 시인이고, 방학 기간에 서울에서 내려오는 문우는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조지훈 시인이었다. /이대환 작가 리 해병대에는 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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