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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邑城)은 조선시대에 군현의 행정 중심지와 행정 관청,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평지와 구릉을 끼고 돌이나 흙으로 높게 쌓은 성곽을 말한다. 당시 이러한 읍성은 왜구를 비롯한 외부의 침입을 막고, 치안을 잘 다스려 나라의 평안을 유지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건물의 하나로 인식되었다. 국내 대표적인 3대 읍성으로는 낙안읍성(순천), 해미읍성(서산), 고창읍성(고창)을 들 수 있다.
순천시에 자리한 낙안읍성은 조선시대의 성곽과 마을 모습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된 역사 유적지이며 실제 주민들이 초가집에서 거주하고 있어 조선시대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복원이 잘된 민속마을로 알려져 있다. 서산 해미읍성은 조선시대 충청도의 전체 육군 병력을 책임지던 충청병마절도사(현재의 사단장 또는 군단장)가 상주할 정도의 군사 요충지로, 규모가 상당히 클 뿐만 아니라 이순신 장군이 무과에 급제하기 전 병영 생활을 했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고창에 있는 고창읍성은 조선시대의 많은 읍성이 평야 지대에 네모 반듯하게 지어진 것과 달리, 나지막한 야산을 감싸안는 형태로 쌓은 평산성(평지와 산성의 혼합형)이다. 특히 고창읍성은 성벽 곳곳에 성을 쌓은 지역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어느 지역에서 참여했는지를 알 수 있으며, 3개의 성문인 북문, 서문, 동문과 함께 크고 단단한 돌이 놀라우리만치 성곽을 빼곡히 둘러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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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은 조선 태조 6년(1397) 전라도 수군도절제사 김빈길 장군이 왜구의 침입에 맞서기 위해 흙으로 처음 토성을 쌓았고, 세종 6년(1424)에 석성(돌성)으로 개축했으며, 그로부터 약 200년 후인 인조 4년(1626) 임경업 장군이 낙안군수로 부임해 성을 크게 중수했다. 낙안읍성의 동문(낙풍루)과 남문(쌍청루)은 문루(성문 위에 세운 다락방 형태의 누각)를 웅장하게 복원했으나 서문(낙추문)은 성곽 통로와 옹성 터 흔적만 남아 있다. 오늘날 아파트와 비교하면 동문은 정문, 서문은 후문, 남문은 옆문이 된다.
그런데 동문과 서문 사이는 곧바른 길이 나 있어 생기가 쉽게 빠져나가는 형상이기 때문에 구불구불한 사행길(蛇行길)로 만들고, 길의 양옆 가까이에는 나무들을 심어두면 생기가 흩어지거나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가 있다. 서문은 우마차(차량) 통행 같은 때만 열어두고 사람이 왕래할 때는 쪽문을 사용하면 생기가 읍성 내에 머물게 된다. 서문은 수구(水口·생기가 빠져나가는 통로)여서 좁으면 좁을수록 생기의 유출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문의 경우 맞은편에 북문을 두지 않은 것은 그 당시 지형상의 이유나 방어의 어려움, 동문·서문·남문을 잇는 통행을 고려한 T자형 도로 동선 등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풍수적인 측면에서 볼 때 대단히 효율적으로 조성된 길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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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4개 문이 개통되어 동문과 서문에서 불어닥치는 바람이 읍성 안에서 충돌하고, 남문과 북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이 부딪치게 되면 읍성 안은 가득 찬 살기(殺氣)로 인해 사람 살 곳이 못 됐을 수도 있다. 이를 풍수 용어로는 ‘생기승풍즉산(生氣乘風則散·생기는 바람을 맞으면 흩어진다)’이라 한다. 아파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동문과 가까운 읍성 안쪽은 냉기와 온기의 급작스러운 변화와 직접 때리는 풍살(風煞)로 인해 주거지로는 부족한 。이 많아 이러한 곳에 살기 위해서는 담장이나 수목 같은 바람막이를 설치하는 것이 좋은데, 이와 같은 담장(수목)을 ‘비보(裨補·부족한 부분을 채움) 담장’이라 한다.
아파트의 경우 부지 중간이면서 주된 도로와 조금 떨어진 지.이 가장 평온한 공간으로 생기가 충만한 곳이 많다. 낙안읍성 또한 읍성의 가장 중요한 건물인 동헌(별감)과 내아, 객사, 송만갑 명창 생가, 이방댁, 향리댁 등이 대체로 생기가 치솟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읍성 내에는 곳곳에 마을을 보호하고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세운 상징물인 ‘장승 무리’가 있어 흉한 기운이 마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으며, 북쪽 성벽 주변에 있는 이순신나무를 비롯한 노거수(老巨樹) 무리는 이곳의 터가 대단히 길함을 암시한다. 낙안읍성은 국내 어느 읍성보다 복된 기운을 간직하고 있다.
주재민 (화산풍수지리연구소장)
(사주명리·수맥·작명연구원
風則散·생기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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