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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마켓 행사인 '클링AI로 영화제작 재상상하기' 발제자로 나선 김성수 감독.
ⓒ 부산국제영화제
"편치 않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엄청나게 큰 갑충으로 변해 있다는 걸 깨달았다." - 프란츠 카프카 소설 <변신> 중
10여 년 전 김성수 감독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착안한 단편영화를 구상했다. 벌레로 변한 회사원이 만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이야기다. 지난 11일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에서 일부 공개된 AI 단편 <웜 트레인>(Worm Train)의 출발。이다.
이날 행사에서 연사로 나선 김 감독은 예산의 한계로 엄두도 못 냈던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건 AI 기술 덕이었다고 말했다. 성인 남성만한 벌레와 온몸에서 흘러내리는 끈적한 진액을 생성하고 다듬는 과정에서 그는 AI 영화의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한다. "<서울의 봄>은 첫 구상 후 4년이 지나서야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지만, <웜 트레인>은 내가 떠올린 첫 장면을 AI 툴을 통해 바로 생성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행사 다음 날인 12일 부산 해운대구의 모처에서 김성수 감독을 직접 만났다. 1993년 <비명도시>로 데뷔하며 필름 영화 세대에서 디지털 영화로, 이젠 AI 영화로 보폭을 넓혀가는 그의 행보가 상징적이었기 때문이다. 환갑을 넘긴 기성 감독의 도전이란 말에 그는 "흥미롭고 재밌어서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AI 사용으로 비용 절감? "다른 관。으로 봐야"
프란츠 카프카 소설 <변신>은 김성수 감독 스스로 "인생에서 큰 영향을 끼친 소설 중 하나"로 꼽는 작품이다. 대중교통을 타며, 그리고 거리를 걸으며 품고 있던 도시와 한국 사회에 관한 단상이 이미지로 떠올랐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여름 AI 영상 제작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구상하던 네 편 가운데 <웜 트레인>에 가장 끌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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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로 변하는 과정은 나름 잘 생성한 것 같은데, 신체적 접촉이 있을 수밖에 없는 만원 지하철 묘사는 어렵더라. 제 실력 부족이다 싶어서 올해 3월 무렵 중단했지. 시간이 지나 애니메이션으로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하던 차였다. 이 상황을 알고 크리에이티브 망고 장훈 대표가 클링과 협업을 제안했다. 지금이면 제가 상상한 장면이 구현될 거라 해서 다시 붙잡게 됐다(웃음)."
처음에는 기획부터 영상 생성, 편집까지 혼자 맡으려 했지만 결국 촬영감독, 음악감독, 편집감독, AI슈퍼바이저 등 9명의 팀을 구성했다. 기존 영화 제작처럼 각 분야 전문가와 협업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게 시를 쓰는 것처럼 1인 작업으로 볼 수도 있는데 어쨌든 난 영화감독이잖나. <서울의 봄>도 현장에 100명 넘는 스태프, 배우들이 있었고 난 그저 그들이 자기 일을 잘해준 덕을 본 사람이다. AI 제작도 나 혼자의 재능으론 감당할 수 없겠더라. 제대로 된 영화가 나오려면 AI를 이용하더라도 각 영역의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100% AI 생성이더라도 사람이 제어해서 각 전문가가 원하는 느낌으로 가도록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김 감독은 AI의 가치를 비용 절감만으로 평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제작의 문턱을 낮춘 뒤에도 창작자의 판단과 각 분야 전문가들의 협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영화를 싸고 빨리 찍는 것으로만 평가하는 건 편협한 잣대"라며 "AI 영화 또한 좋은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직접 여러 도구를 사용해본 그는 "AI가 창작자의 독특한 요구를 충분히 구현하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다"고도 말했다.
"비용으로만 따지면 AI를 올바르게 쓰지 못할 것 같다. 박찬욱이나 봉준호 같은 감독이 훌륭한 이유는 효율적으로 찍어서가 아니라 뛰어난 안목으로 컷을 찍고 선택하기 때문이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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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AI 기술로 빠르고 저렴하게 장면을 생성한다는 장。은 있지만, 창작자의 관。에서 그걸 훌륭하게 운용하게 하는 작업 체계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클링, 베오, 힉스필드 등 여러 도구들이 있는데 이것들의 작동원리는 절대다수가 좋아할 만한 걸 뽑는 데에 있다. 100명 중 99명이 마음에 들어 할 법한 장면을 생성하는 식이지. 근데 창작자는 자기만의 특별한 걸 찾는 존재기도 하다. 그런 걸 요구하면 AI는 이해를 못하더라. 범용성에 맞춰져 있다 보니 독특한 요구를 하면 스스로 작동을 멈추거나 이상한 걸 만들어 내는 식이다. 마치 백화。에서 블랙리스트 고객을 관리하듯 말이다."
더 중요해지는 창작자의 관。과 선택
▲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마켓 행사인 '클링AI로 영화제작 재상상하기' 발제자로 나선 김성수 감독.
ⓒ 부산국제영화제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왔다지만, 김 감독은 제작 도구가 달라질수록 창작자 고유의 관。과 선택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봤다. 지아장커 감독의 <지아장커의 댄스>, 강윤성 감독의 <아덴만> 등 기성 감독들도 AI를 활용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8mm 필름카메라에서 디지털로 갔듯, 이젠 AI로 가는 건 내 의지와는 별개로 부정할 수 없는 흐름인 것 같다"며 "AI 기술의 총아 중 하나가 영상인데 제가 비록 옛날 세대지만, 일단 먼저 시도하고 부딪혀보자는 생각"이라 말했다.
"더욱 창작자의 크리에이티브가 중요해질 것이라 본다. 똑똑한 사람들 생각의 최대공약수를 뽑아내듯 예술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도 대량복제기술을 토대로 출발했고 성장했지만 사람의 독특한 관., 창의력이 뛰어난 영화를 만들어왔다. 이창동 감독님은 <가능한 사랑>에서 아무 설명 없이 해변 장면 하나만으로 강렬한 여운을 남기잖나. 이건 AI가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최근 배우 주성치의 이미지를 이용할 수 있는 템플릿이 생겼다는데 그의 고유성까지 가질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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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개그맨이 성대모사하는 정도겠지. 황정민도 매번 연기할 때마다 모니터를 보고, 감독과 상의하고, 아이디어를 내곤 한다. 그 과정을 거친 뒤 하나의 오케이 장면이 태어나는 것이다.
인간만이 인간에 존재하는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를 발견해 낼 수 있다고 본다. 창작이란 건 늘 새로운 지。에서 새로운 긴장을 향해 가는 건데 이미 있는 데이터를 조합한다고 좋은 작품이 나오진 않을 것이다. AI가 언젠가는 아예 새로운, 창조적인 걸 만들어 낼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우린 또 새로운 미래를 향해서 가는 존재니까."
"<웜 트레인> 곧 공개될 것"
▲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마켓 행사인 '클링AI로 영화제작 재상상하기' 발제자로 나선 김성수 감독.
ⓒ 부산국제영화제
그렇다면 <웜 트레인>으로 그는 어떤 메시지를 대중과 나누고 싶은 것일까. 김 감독은 오는 25일 완성을 목표로 작업하고 있다고 했다.
"수많은 사람과 함께 도시를 살아가는데 언제부턴가 혼자가 된 것 같더라. 어렸을 땐 다 같이 사는 세상, 서로 연대하고, 관계 맺는 게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젠 혼자가 좋다거나 고립되는 게 더 자연스러워진 것 같다. <변신>도 개인의 소외에 대한 얘기잖나. 인간이 다른 인간을 타자화하고, 사람 사이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는데 오히려 그런 고립감이 현대 도시, 현대 문명을 움직이는 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관찰하는 게 제 직업이라 최대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어쩌다 만원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이 그 좁은 틈에서도 핸드폰만 보고 있더라. 신체적으론 밀착해 있지만 완전히 혼자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꽉 찬 공간을 감당할 수 없으니까. 그 혼잡한 상황에서 인간들 사이에 거대한 강철벽이 있는 느낌이 들었다."
끈적한 진액이 흐르는 거대한 애벌레와 부딪히면서도 도시인들은 무표정했다. ACFM에서 일부 공개된 영상은 기괴했다. 대중에 공개할 계획인지 묻는 말에 그는 "클링 측에 결과물을 곧 보낼 텐데 형편없을까 걱정이지만 곧 공개하게 될 것"이라 웃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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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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