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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유나유 작성일26-10-16 00:44 조회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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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 소장이 1957년 10월 전북 완주의 양야리교회 예배당인 군용천막 앞에서 있는 모습. 아버지 탁명환은 전북 정읍 신태인읍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부모님을 따라 이북 아오지로 건너가 7년간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47년 봄, 겨우 아홉 살이던 아버지는 공산당의 학정을 피해 가족과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 기차와 자동차로 경기도 연천 근처까지 이동한 후엔 온 가족이 야음을 타 한탄강의 살얼음을 맨발로 건넜다. 소련군과 미군이 철교 양편에서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조부모의 고향인 전북 부안군을 찾아갔으나 일가족 모두 지독한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가족 중 신앙생활을 가장 먼저 한 분은 할머니셨다. 월남 이듬해 기독교를 영접한 할머니는 집에서 십리길(약 4㎞)을 걸어 매일 교회 새벽예배에 출석할 정도로 신앙에 열심이셨다. 무엇보다 엄청난 애주가이자 유교적 가치관을 신봉하던 할아버지 구원을 위해 새벽예배 때마다 눈물로 기도하곤 했다. 새벽에 기도하러 나가는 아내를 구박하던 할아버지도 49년 10월 세례를 받으셨다. 할머니의 기도가 2년 만에 결실을 맺은 것이다 사이트손오공게임 . 훗날 할아버지는 서울 충은교회 협동장로로 활동하며 교회를 적극 섬기셨다. 어머니와 함께 새벽예배에 출석하며 신앙을 키운 아버지는 신흥고를 졸업하고 전북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고교 시절 미국 남장로교의 심득민(로버트 L 스미스) 선교사에게 영어회화와 성경을 배웠던 아버지는 그에게 전북 완주군 양야리의 한 개척교회 전도사로 나서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때 아버지 나이는 열아홉 살이었다. 당시 양야리는 노름과 우상숭배, 신흥 종교인 영주교가 성행하던 마을로 앞서 파송된 목회자들이 도망치듯 떠날 정도로 텃세가 엄청났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제안을 수락했다. “사도 바울이 환상 속에 마케도니아 사람의 도움 요청을 받았듯 나 역시 유사한 요청을 받았으니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복음의 씨를 심지 못하면 시체가 돼 돌아오겠다”는 비장한 각오 아래 주말이면 양야리교회로 향했다. 주중에는 전주에서 대학을 다니며 가정교사로 일했고 주말엔 산간벽지인 이곳 교회를 찾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다빈치게임 . 농촌 계몽소설 ‘상록수’에 특히 감명을 받았던 아버지는 국민학교를 빌려 야학을 열고 교실로 모여든 아이들에게 윤리와 영어를 가르치며 복음을 전했다. 교회 또한 2년 만에 100여명이 모여 건물을 신축했다. 이 시절 일화 중 하나가 ‘예수 무당 사건’이다. 하루는 한 교인이 아버지를 찾아와 병든 새끼 돼지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했다. 기도했는데도 돼지가 죽으면 믿지 않는 주민들이 수군댈 것이 뻔했다. 아버지는 돼지우리 앞에 무릎을 꿇고 “돼지를 살려주셔서 믿음 약한 교인들이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놀랍게도 기도 후 새끼 돼지는 기적처럼 살아났다. 훗날 세례를 받은 그 교인은 “예수 믿은 후 무당을 부를 수 없어 전도사님을 무당으로 알고 기도를 부탁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예수 무당 노릇을 했다고 회고했지만 동시에 이를 계기로 한국 기독교인 가운데 깊이 뿌리내린 무속적 의식구조를 엿봤다고 했다. 당시 아버지는 전도사와 사회사업가, 교육자와 대학생이란 1인 4역을 숨 가쁘게 감당했다. 그러던 아버지의 건강에 결국 적신호가 켜졌다. 58년 교회 강단에서 설교 도중 쓰러진 것이다. board.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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