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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유나유 작성일26-10-10 21:50 조회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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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이름 차병직 지음 창비 2012년 말 한국문명교류연구소는 소장 정수일의 팔순기념 문집 발간을 위해 50여 명의 인사들에게 원고 청탁을 했다. 가장 먼저 원고를 보낸 이는 이른바 분단문학의 거장 이호철이었다. 정수일과 호형호제할 정도로 가깝던 그였지만 글은 매캐했다. 20년 가까이 사귀었어도 정수일이 솔직한 속내를 드러낸 적이 없다고 썼다. 꼭 그 탓은 아니지만 결국 기념문집은 나오지 못했다. 정수일과 20년 가까이 교류하고 여행도 함께 했던 저자 역시 평전을 쓰면서 그간 안다고 믿었던 것과는 다른 그의 면모를 새삼 느끼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저자는 각종 자료와 증언을 대조해 정수일의 잘못된 기억을 바로잡고 과장된 학문적 성취를 되짚으며 차분히 그의 일대기를 재구성한다. ‘일곱 개의 이름, 다섯 개의 국적’이라는 카피처럼, ‘무함마드 깐수’ 정수일이 드라마틱한 삶을 산 것은 익히 알려진 바다. 당시는 만주국이었던 옌벤에서 태어나 중국 국비유학생 1호로 카이로대에 유학하고, 모로코 대사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다 북한 국적을 회복해 평양외국어대 교수가 됐다 백경게임랜드 . 북한 첩보원으로 신분 세탁을 위해 레바논·튀니지·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 한국에 들어와 단국대 교수로 재직 중 체포됐다. 사형 구형에 최종 12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5년만에 광복절 특사로 출소했다. 그의 최후 진술은 유명하다. “저는 어떤 처벌을 받더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압수된 컴퓨터에 저장된 ‘고대동서교류사’ 원고는 살려내주십시오.” 이처럼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학자였다. 법학자 안경환은 불발된 문집 원고에 이렇게 썼다. “‘문명의 교류’, 그가 평생 매달린 화두는 종교도 이념도 초월한 것이었다.” 정수일이 초월한 것은 종교와 이념뿐만이 아니었다. 학문, 특히 ‘실크로드학’ 이외의 잡다한 인간관계나 세상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책에 소개된, 북한의 딸과 손자가 쓴 편지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런 학자적(?) 무심함이 느껴져 이호철이 크게 섭섭해할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황금성오락실 . 북한 가족들의 안위를 생각하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한국 정보당국도 신경 쓰였겠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다. 책은 그의 회고록 원고가 출판사가 기대했던 내밀한 개인사 대신 실크로드 연구사로 채워져 결국 다른 출판사로 바뀐 해프닝도 들려주는데 역시 다른 이유가 아닐 터다. 그래선지 평전을 읽어도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들이 남는다. 언론 보도 수준의 정보만 보냈다는 그가 어떻게 10년 넘게 정보원으로 활동하고 여러 차례 훈포상까지 받았을까, 그의 전향에도 불구하고 북한 가족들이 무사하고 손자가 할아버지를 영웅으로 자랑할 수 있을까 하는 것들 말이다. 분단이 초래한 극적인 삶에도 불구하고 정수일은 운이 좋은 편이다. 남들 은퇴할 나이에 감옥에서 나왔어도 많은 지인의 도움으로 연구에만 몰두해 십수 권의 책을 펴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학문적으로는 불행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학문에만 전념했다면 보다 선명한 업적을 남겼을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 90이 넘어서까지 그가 손에서 교정지를 놓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훈범 작가 대사관에서 외교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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