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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성원성 작성일26-10-05 08:47 조회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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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전 발굴을 시작해 복원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라오디케이아의 템플에이 입구. “이스탄불의 남산타워예요.” 처음 만난 튀르키예 가이드가 낯선 도시를 설명하는 방식이 친숙했다. 이스탄불 아시아 쪽 언덕에 삐죽 솟은 차믈르자 타워는 높이 369m의 방송 송출탑이다. 그의 구수한 설명 덕에 처음 밟은 도시가 조금 덜 낯설었다. 한국어를 전공하고 30년 넘게 가이드 일을 해온 규벤 듀젠리씨(이하 규벤씨)는 한국인 관광객에게 튀르키예를 설명하는 데 익숙했다. 국민의 99%가 이슬람 신도로 알려진 튀르키예 청년은 돼지고기를 못 먹는 것이 집안 내력인 한국인 여성과 결혼했다. 튀르키예 국가대표 수구 선수인 아들은 가슴에 ‘용기’라는 한글 문신을 새겼다. 국가 공인 1호 한국어 가이드 규벤씨는 거대한 역사와 낯선 문화를 설명하다가도 “한국으로 치면…”이라며 익숙한 비유를 찾아냈다. 덕분에 이스탄불에서 에게해를 거쳐 데니즐리까지 이어지는 여정은 단순한 유적 답사가 아니라, 오래된 도시가 오늘의 삶과 어떻게 겹쳐 있는지를 밀도 있게 살펴보는 시간이 됐다. 이스탄불 보스포로스 해협의 일몰 무렵. 건너편에 규벤씨가 “이스탄불의 남산타워”라고 부른 차믈르자 타워가 보인다. 모스크를 지으면 시장도 함께 만들었다 아야 소피아로 향하기 전, 규벤씨는 아라스타 바자르를 출발.으로 삼았다. 향신료와 간식, 기념품을 파는 상.들이 이어졌다. ‘선쇼핑 후관광’인가. 오스만 제국에서는 대형 모스크를 중심으로 시장·학교·목욕탕 등 여러 시설을 묶은 복합단지를 조성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역사를 들려주기 위해서였다. 과거 동로마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중심지였던 이스탄불의 역사 지구는 198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아야 소피아와 톱카프 궁전, 술탄ㅍ아흐메트 광장, 바실리카 지하 저수조, 그랜드 바자르와 이집션 바자르 등은 걸어서 둘러볼 수 있는 범위에 모여 있다. 관광객에게는 각각의 명소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종교·정치·상업과 일상이 겹쳐 있던 하나의 생활권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롭다. 아야 소피아의 내부. 오스만 시대 철거가 아닌 회칠로 가리는 방식을 택한 덕분에 훗날 복원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아야 소피아는 약 1500년 전인 532~537년 동로마 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 세워진 거대한 성당이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정복한 뒤 모스크로 사용됐고, 1935년 박물관으로 개관했다가 2020년 다시 모스크가 됐다. 지금도 보존과 복원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천장과 벽을 장식한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를 카메라에 담았다. 오스만 시대 철거가 아닌 회칠로 가리는 방식을 택한 덕분에 훗날 복원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땅 아래에 또 하나의 이스탄불이 있다 이집트에서 옮겨온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와 뱀기둥, 벽돌 오벨리스크가 우뚝 솟아 있는 술탄아흐메트 광장(옛 히포드롬)은 고대 도시의 시민 활동이 펼쳐지던 중심지였다. 지금은 광장처럼 보이지만 동로마 시대에는 전차 경주와 각종 행사가 벌어졌다. 규벤씨는 “지하에 비하면 지금 보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모바일 무료충전야마토 . 그는 마치 귀한 부동산 정보라도 말하듯, 지하에 잠들어 있는 당시의 경주장 등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귀띔했다. 초대형 도시 이스탄불의 물 부족 타계를 위해 6세기에 만들어진 예레바탄 지하 저수조. 이스탄불을 걸으며 몇 번이나 지상보다 놀라운 지하의 이야기를 들었다. 예레바탄 지하 저수조도 그랬다. 6세기에 만들어진 거대한 지하 저수시설이다. 공식 인구 약 1576만 명, 흔히 2000만 명 안팎이 산다고 말하는 초대형 도시 이스탄불은 그때나 지금이나 물 부족에 시달렸다. 지상의 화려한 궁전이나 모스크와 달리, 땅 아래에는 도시가 물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거대한 공간이 숨어 있었다. 역사적 반도의 지하와 지상에는 서로 다른 시대의 흔적이 포개져 있다. 4000여 개의 가게가 있는 오래된 시장 그랜드 바자르에 들어서자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카펫, 도자기, 금속공예품, 각종 기념품 상.이 미로처럼 이어졌다. 15세기 중반까지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는 세계 최대 규모의 ‘지붕 있는’ 시장 중 하나다. 60여 개의 거리와 4000여 개의 상。이 들어서 있다. 특히 금 세공품 가게가 눈에 많이 띄었다. 결혼식 때 신부에게 금을 선물하는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양이나 소를 잡고 며칠씩 축제처럼 결혼을 즐겼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비용 부담 때문에 가까운 친척들과 간소하게 결혼식을 치르는 예도 있다고 했다. 그랜드 바자르에서 이집션 바자르로 가는 길. 과거의 시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거대한 드라마 세트장을 방불케 했다. 이집션 바자르의 고양이. 튀르키예에서 고양이가 갈 수 없는 곳은 없는 듯했다. 또 다른 시장 이집션 바자르(스파이스 바자르)로 가는 길은 역사 드라마의 세트장을 방불케 했다. ‘since 1651’이라고 적힌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건축 연도가 적힌 건물 하나하나가 이 도시의 연표처럼 보였다. 예니 자미 복합단지의 일부로 1660년대 건설된 오래된 시장은 18세기부터 이집트에서 들어오는 상품과 향신료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이집션 바자르’라는 이름이 널리 쓰이게 됐다. 오늘날에는 향신료뿐 아니라 각종 식료품과 기념품을 파는 시장으로 관광객을 맞는다. 시식 인심이 후한 가게에서 ‘터키시 딜라이트’로 알려진 로쿰을 맛봤다. “공장에서 가져오는 가게도 있는데, 물어보면 전부 직접 만들었다고 해요. 정확히 알 수가 없어요(웃음).” 전통적인 로쿰은 전분과 설탕 등을 넣어 굳힌 뒤 한입 크기로 잘라 만든다. 요즘 로쿰은 각종 견과류나 과일 등 속을 넣어 화려하기 그지없다. 갈라타다리에는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으로 붐빈다. 왼쪽으로 건너편 갈라타타워가 보인다. 고양이가 함께 사는 도시 시장을 빠져나오자 골든혼을 사이에 두고 이스탄불 구시가지 에미뇌뉘와 신시가지 카라쾨이를 잇는 갈라타 다리가 나왔다. 다리 아래에는 생선 요리와 해산물을 파는 식당과 카페가 줄지어 있다. 다리 난간 위로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들의 양동이를 훔쳐보며 다리를 건넜다 모바일 바다이야기 오리지널 . 멀리 갈라타 타워가 길잡이가 됐다. 여기까지 왔으면 튀넬을 안 탈 수 없다. 1분30초 남짓 고작 한 정거장을 오가는 노선이지만, 1875년 운행을 시작한 튀넬은 런던 지하철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하 도시철도 가운데 하나다. 휴관일이라 톱카프 궁전은 들어가 보지 못했음에도 이미 걸음 수가 1만 보를 넘겼다. “습습~습습~.” 규벤씨가 고양이를 발견했다는 신호다. 이스탄불에는 정말 고양이가 많았다. 상. 앞에도, 호텔에도, 골목에도 고양이 밥과 물이 놓여 있다. 사랑을 많이 받아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고양이들이 태연하게 도시의 일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호텔 앞에도, 상。 앞에도 고양이 사료와 밥을 내놓은 풍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스탄불의 명동으로 불리는 이스티클랄 거리를 지나 규벤씨가 치즈케이크와 커피 맛집으로 꼽는 만다바트마즈에서 숨을 돌렸다. 원두를 곱게 갈아 작은 주전자 체즈베에 넣어 끓여내는 튀르키예식 커피 카흐베를 맛봤다. 튀르키예에서는 커피를 다 마신 뒤 잔을 뒤집어 남은 원두 찌꺼기의 모양으로 .을 치는 풍습이 있다. 규벤씨가 내 잔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고양이가 생길 거예요.” 거짓말처럼 잔 안에는 고양이처럼 보이는 모양이 남아 있었다. 그다음 날, 바다 쪽으로 이번 여행에는 열기구로 유명한 카파도키아도, 유명 휴양지 안탈리아도 없었다. 이스탄불 압축 도보여행을 마친 다음 날 이른 새벽 숙소를 나와 에게해 연안의 이즈미르로 향했다.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앞자리 승객이 선크림부터 꺼내 발랐다. 햇살이 눈부셨다. 해안의 소도시 우를라는 여름이면 체류 인구가 크게 늘어나는 휴양지다. 코로나19 이후 이스탄불 사람들이 이곳에 집을 사면서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규벤씨는 아쉬워했다. 화가와 도예가, 수공예품, 골동품 등을 만날 수 있는 거리가 조성된 조용한 마을에서 노인들은 진하게 우린 홍차 ‘차이’를 물처럼 마시며 보드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스를 연상시키는 풍경의 알라차티. 요즘은 국내 개별 관광객도 이국적인 풍경을 즐기기 위해 종종 찾는다. 이즈미르에서 차로 약 한 시간 거리의 알라차티는 우를라보다는 관광지다운 모습이었다. 여기저기 내걸린 빨간 튀르키예 국기가 아니었다면 그리스의 어느 휴양지에 와 있다고 착각할 법했다. 흰 벽의 건물과 오붓한 골목, 부겐빌레아 꽃그늘 아래 카페와 레스토랑이 이어졌다. 과거 이 지역에는 그리스계 주민들이 살았고, 1923년 로잔 조약에 따른 그리스·튀르키예 간 인구교환 이후 인구 구성이 크게 바뀌었다. 당시의 건축과 생활문화 흔적이 현재의 관광지 풍경 속에 남아 있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여름이면 이곳을 찾아 수다도 떨고 술도 마시며 유유자적 휴가를 즐긴다. 투명하지만 물을 타면 우윳빛으로 변하는 라키는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전통 증류주다. 순해 보이는 색과 달리 기본 45도 이상으로 알코올 도수가 강해서 ‘사자의 우유’라고 불린다고 한다. 무료머니릴게임 “튀르키예 사람들은 술은 좋아하지만, 술 취해서 실수한 사람하고는 다시 앉지 않아요.” 규벤씨의 말에 튀르키예의 음주 문화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이스탄불의 명동이라 불리는 이스티클랄 거리 풍경. 튀르키예에서는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나부끼는 국기와 함께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아타튀르크라는 이름 단기 여행자의 눈에 인상적으로 다가온 튀르키예 사람들의 자부심에는 튀르키예 공화국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빠지지 않았다. 홀에 커다란 초상화를 걸어둔 셀추크의 레스토랑 키벨레 가스트로의 와이파이 비밀번호는 그의 생년월일과 사망 연도를 조합한 숫자였다. 국가 대표 유적지 에페소스로 가는 길, 튀르키예 학생들은 어디로 수학여행을 가는지 물었다. “이즈미르라면 에페소스에 가고, 이스탄불이라면 톱카프 궁전에 가거나 보스포루스 크루즈를 타죠.” 규벤씨는 이어 “물론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초대 대통령의 무덤에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정복하고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 삼은 술탄 메흐메트 2세를 잇는 국민적 영웅 아타튀르크의 업적을 나열했다. 아랍 문자를 대신해 1928년 라틴 문자를 기반으로 한 새 튀르키예어 문자를 도입하고, 여성의 교육 기회를 확대해 법적·사회적 지위를 바꾸는 개혁도 추진했다는 。도 빼놓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은 ‘스마트폰’이라고 그대로 부르잖아요. 튀르키예는 언어협회에서 외국 단어를 그대로 안 쓰기 위해 튀르키예어 단어를 만들어요.” 외국에서 들어온 새로운 개념과 단어를 튀르키예어로 바꾸려는 언어문화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튀르키예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과 같았다. 빨간색 국기가 도처에서 만국기처럼 휘날리는 나라. 그런 강렬한 애국심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모르겠어요. 그건 우리 DNA에 있나 봐요.” 고개를 들어서 그 위용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에페소스의 셀수스 도서관 에페소스의 공중 화장실. 5~6m 아래로 물이 흘러 냄새 걱정조차 덜 수 있었다. 에페소스에서는 ‘그리스 유적’이라는 말이 부족했다 로마 제국의 아시아 속주 수도 중 하나로 번성했던 에페소스 입구에 들어섰다. 각종 다큐멘터리나 여행기에서 본 풍경이건만,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져 있는 고대 도시의 흔적이 잘 가꿔진 명승지에 익숙한 이방인을 당황케 했다. 에페소스 유적의 ‘신성한 길’에 남아 있는 헤르메스 부조. 이런 유적이 곳곳에 아무렇지도 않게 배치되어 있다. 에페소스 일대의 정착 역사는 기원전 7천년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헬레니즘과 로마시대를 거치며 크게 번성했고,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도 중요한 도시가 됐다. 201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에페소스를 ‘그리스·로마 유적’이라고만 부르기에는 역사가 너무 유구하다. 특히 아르테미스 신앙은 이 땅의 복잡한 문화적 층위를 보여준다.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는 단순히 그리스에서 건너온 여신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아나톨리아의 오래된 모신 신앙과 연결된 독특한 형태로 발전했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였지만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일부 유구와 복원된 기둥 하나뿐이다. 바다이야기 기프트 전환 에페소스 유적지에서 부자들이 살았다는 공간. 별도의 입장권을 구입해서 들어가야 한다. 셀수스 도서관은 규모도 놀랍지만, 벽과 벽 사이에 공간을 둬 습기를 차단한 벽 구조와 꽃잎 모양으로 만든 수챗구멍에 이르기까지 꼼꼼한 디테일이 눈에 띄었다. 당시 부자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테라스 하우스는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요즘 인테리어 하듯 유행에 따라 바꿨다는 벽화와 모자이크, 압도적인 크기의 전용 신전과 개인 화장실 등이 흥미진진했다. 무엇보다 당시 부자들의 주거공간을 보기 위해서는 별도의 입장권을 사야 한다는 。 또한 묘했다. 그늘 한 . 없는 유적지를 둘러본 뒤에는 에페소스 체험 박물관에서 땀을 식혔다. 몰입형 기술을 활용해 마치 고대 에페소스로 들어가는 배에 탑승한 듯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한국어 가이드 지원도 된다. 테라스 하우스와 마찬가지로 입장권을 구입하는 프로그램이라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은 대부분 건너뛴다며 규벤씨는 안타까워했다. 로마 제국 전성기를 이끈 하두리아누스 황제를 위해 지은 신전. 도둑 등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신전 입구에는 메두사 장식을 새겨 넣는다. 시린제에서는 시간이 조금 천천히 흘렀다 이즈미르주 셀추크의 시린제는 동화 속 마을 같았다. 올리브나무, 포도밭이 이어지는 좁은 산비탈을 지나 놀라울 정도로 많은 카페와 와인숍, 기념품 가게가 들어차 있다. 2023년에는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의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 가운데 하나로 선정됐다. 전통적인 건축과 생활문화, 농촌 관광을 보존하면서 관광과 지역 발전을 연결한 。이 평가 대상이 됐다. 각종 과일을 넣어 만든 와인이 유명하다고 해 시음도 했다. 달짝지근했다. 한때 마야력의 종말론과 관련해 이 마을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시린제는 종말의 피난처라기보다, 예쁘게 잘 꾸며놓은 테마파크 같은 분위기였다. 튀르키예 여행에서 빼놓기 어려운 데니즐리의 파묵칼레. 파묵칼레는 ‘목화성’이었다 튀르키예 여행에서 빼놓기 어려운 데니즐리의 파묵칼레에 닿았다. 규벤씨는 계속 ‘목화성’이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목화의 성’을 뜻하기 때문이다. 데니즐리는 실제로 목화 재배와 섬유산업으로 유명한 도시이기도 하다. 눈처럼 하얀 풍경은 얼어붙은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곳곳에 작은 웅덩이가 계단처럼 이어졌다. 칼슘이 풍부한 온천수가 지표로 흘러나오면서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고 탄산칼슘이 침전돼 만들어진 석회화 지형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온천수는 계단식 웅덩이와 새하얀 석회화 단층을 만들어냈다. 흰 바닥은 보기보다 미끄럽지 않았지만 물이 고인 곳에서는 조심스럽게 발을 디뎌야 했다. 인증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세계 각지에서 몰려 있었다. 히에라 폴리스 유적지의 대극장. 맨 뒷자리 관객에까지 소리가 전달되도록 설계됐다. 히에라폴리스 초입에서 설명 중인 가이드 규벤씨. 튀르키예의 1호 한국어 가이드인 그는 현재 게임업계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고대인에게도 온천은 휴식이었다 고대부터 사람들은 이 온천을 찾아 히에라폴리스에 머물렀다. 히에라폴리스는 기원전 2세기 말 페르가몬의 아탈로스 왕조에 의해 조성된 도시로 로마 시대에 더욱 번성했다. 모바일 바다이야기게임솔루션 대극장 앞에 서자 다시 규모에 압도됐다. 규벤씨는 이곳에서 벌어졌던 공연과 검투 경기 등을 설명했다. 맨 뒷자리 관객에까지 소리가 전달되도록 설계된 고대 극장의 구조도 눈에 들어왔다. 그에 따르면 원래는 관객석 1층까지 내려가 볼 수 있었으나 스마트폰을 보던 관광객이 넘어지는 사고 이후 안전상의 이유로 일부 구간의 접근이 제한돼 있다고 한다. 문명의 역습이라 해야 할까. 지금도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고대 수영장. ‘클레오파트라의 수영장’이라고 알려진 고대 연못도 남아 있다. 연중 수온은 약 36도. 규벤씨는 “유럽 사람들에게는 뜨겁지만, 한국인에겐 뜨겁지 않다”고 말했다. 수천 년 전 사람들이 그랬듯 현대의 사람들이 온천욕을 즐기고 있었다. 3년 전 거의 2천년만에 다시 공연이 열렸던 라오디케이아의 대극장. 발굴을 앞둔 라오디케이아의 또 다른 대극장. 아직 흙 속에 잠든 도시 마지막으로 라오디케이아를 찾았다. 기원전 3세기 중엽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2세가 세운 도시로, 왕비 라오디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 로마시대에는 중요한 교역 도시로 번성했고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도 중요한 곳이었다. 성경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발굴 작업이 시작된 지 오래지 않은 유적지라 변변한 편의시설도 없고 기념품이라고는 신전 사진을 넣은 손지갑 정도가 고작이다. 하지만 전성기에는 양모 산업으로 크게 흥한 도시다. 외부로부터 파이프로 온천수를 끌어온 대중목욕탕, 흐르는 물로 세례식을 치르도록 설계된 교회 등 실용과 예술을 모두 잡은 고대인들의 미감은 혀를 내두르게 했다. 산더미 같은 흙을 파내고서야 제 모습을 되찾은 대극장에는 당시 부유층이 대리석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던 지정석의 흔적도 남아 있다. 고대인들의 미감을 엿볼 수 있는 교회의 바닥 모자이크. “얼마 전에 거의 2000년 만에 이 극장에서 다시 공연이 열렸어요.” 20년에 걸친 발굴과 복원을 마친 라오디케이아 대극장에서 2023년 이즈미르 국립교향악단의 공연이 열렸다. 엄밀히 말하면, 1700여 년 만. 그 벅찬 현장을 누린 관객에게 질투가 났다. 시장인 아고라가 세 곳, 큰 마차 경기장, 또 다른 대극장에 여러 곳의 교회까지 수많은 유적이 아직 지하에 잠들어 있다. “5년 뒤에 오면 오늘보다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을 거예요.” 10년 전에는 흙더미만 보았다던 규벤씨가 기대감에 찬 얼굴로 말했다. 그는 내내 과거를 보여주는 동시에 미래를 이야기했다. 튀르키예는 곳곳에 산재한 유적을 매끈한 관광상품으로 만들기보다는 발굴하고 연구하고 복원하면서 차근차근 공개하고 있었다. 지진에 무너진 벽을 감쪽같이 새로 세우기보다 무엇을 어떻게 복원했는지를 과정 자체로 드러내고 있는 현장도 이채로웠다. 웨딩촬영 중인 신부는 이방인을 환한 미소로 반겼다. 흙 아래에 묻혀 있던 도시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수천 년 전 사람들이 사용했던 공간이 다시 오늘의 사람들을 맞는다. 과거는 박물관 안에 갇힌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되찾아지고 있었다. 아련한 시선으로 라오디케이아를 돌아 나오는 길, 오래된 대리석 기둥을 배경으로 웨딩 사진을 촬영 중인 신랑·신부와 맞닥뜨렸다. 변치 않을 사랑의 순간을 남기는 공간으로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싶었다. 제국의 수도로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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