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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유나유 작성일26-10-04 14:44 조회1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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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4월 끝자락, 나는 앞으로 내 운명이 어떻게 될지 가늠조차 하지 못한 채 중국 단동에서 압록강을 건너 북한 신의주로 북송됐다. 1997년 2월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처음 북한을 떠난 지 3년 만이었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집으로 결국 중국 경찰에 잡혀 북송되는 방법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그날 내가 건넌 다리는 중국 단동과 북한 신의주를 잇는 압록강의 다리였다. 다리는 두 도시를 연결하고 있었지만 당시의 내게 그 길은 '연결'이 아니었다. 공포와 두려움의 길이었다. 어쩌면 수많은 북향민들이 이 다리를 건너 북송되면서 나와 같은 두려움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해 6월, 전혀 다른 의미의 길이 열렸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분단 이후 처음 열린 남북정상회담이었다. 두 정상은 6월 15일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고 남북 간 경제협력과 사회·문화 등 여러 분야의 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합의했다.
그때 신의주 감옥에서 그 소식을 들으며 '당장이라도 통일이 되는 건가' 싶어 설렜던 기억이 난다. 압록강을 건너 북한으로 끌려가던 그해, 한반도에서는 남과 북이 서로를 향해 한 걸음 움직이고 있었다.
25년 만에 다시 단동에 서다
▲ 2025년 3월 단동 호텔에서 찍은 일출
ⓒ 박예영
그리고 25년이 흘렀다. 지난해 3월, 재단법인 한빛누리 2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안녕, 평화> 촬영을 위해 단동을 찾았다. 북송 이후 25년 만이었다. 압록강 건너편이 잘 보이는 단동대교 앞 호텔에 묵었다. 불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둔 신의주를 바라보는데 절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25년 전 북송되어 다리를 건너자마자 신체검사를 받았던 건물도 눈에 들어왔다.
한참을 바라봤다. 그 후 나는 다시 북한을 떠났고 대한민국에 정착해 어느덧 북한에서 산 시간보다 더 긴 세월을 이곳에서 살고 있다. 같은 강인데 내가 서 있는 자리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강 위에는 내가 북송될 때 건넜던 오래된 다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중국 단동과 북한 신의주를 연결하는 새로운 다리, '신압록강대교'가 놓여 있다.
중국은 이미 2014년 다리를 완공했지만 북한 측 연결도로와 세관시설 등이 갖춰지지 않아 10년 넘게 사실상 멈춰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이 다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9일 로이터통신은 위성영상 분석업체 SI Analytics의 분석을 인용해 북한 측 세관·출입국 시설과 연결도로 등의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보도했다. 10년 넘게 건너갈 수 없었던 다리가 이제 실제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길이 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나는 이 소식이 반가웠다.
다리는 연결되어야 한다
물론 신압록강대교가 열린다고 남북관계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북한은 남쪽과의 연결을 끊으면서 중국과 러시아를 향한 연결은 넓히고 있다. 그러니 이것을 곧바로 한반도 평화의 진전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그럼에도 나는 오래 멈춰 있던 다리에 다시 길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 다리는 연결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난 글에서 나는 북한이 '통일'이라는 말을 지우고 남과 북을 적대적인 두 국가로 규정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고향과 가족, 통일을 향한 열망까지 지울 수는 없다고 썼다.
길도 마찬가지다. 정치가 길을 막고 국경과 철길을 끊을 수는 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물자가 오가야 하는 필요까지 없앨 수는 없다.
지난해 단동을 방문했을 때 한 물류회사의 간판을 보고 놀라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다. '단동에서 평양까지' 화물 직송을 한다는 광고였다. 그 아래에는 단동에서 실은 짐을 신의주에서 옮겨 싣지 않고 "다음날에는 평양까지 무사히 도착"한다고 적혀 있었다. 단동에서는 단 하루 만에 평양으로 물건이 가는데, 왜 가장 가까운 거리를 둔 우리는 보내지 못한단 말인가. 길이 없어서가 아니다. 길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단동-평양물류전문 동남운송 지난해 3월 중국 단동에서 촬영한 물류회사 간판. ‘다음날에는 평양까지 무사히 도착’이라고 적혀 있다.
ⓒ 박예영
북한은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 북한의 움직임을 조금 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 지난 7일 북한과 러시아는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첫 도로교를 개통했다. 이어 신압록강대교의 북한 측 공사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를 향해 물리적인 연결망을 넓히고 있다.
외교적으로도 움직이고 있다. 북한 정권수립 78주년을 맞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북중관계를 계속 발전시키겠다는 뜻을 밝혔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북러 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축전을 보냈다.
그렇다고 북한의 움직임을 낙관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최근 영변에 새로운 우라늄 농축시설이 건설됐고, 강선에서도 농축 능력이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대화의 문을 두드리는 동안에도 북한의 핵은 멈춰 있지 않다. 그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북한이 무엇을 위협으로 인식하고 왜 핵을 자신들의 안전을 지키는 수단이라고 주장하는지도 읽어야 한다. 북한이 핵을 강화한다고 우리까지 대화의 문을 닫는다면 남는 것은 더 강한 무기와 더 깊은 불신뿐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9일 "9월이 한반도 상황과 동북아 상황 속에 굉장히 중요한 결절."이라며 북미대화가 이뤄지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또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는 미국이나 중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며 "우리는 부지런히 적극적으로 숙고하고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며칠 앞서 열린 국제한반도포럼에서도 정 장관은 미국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가만히 있을 것이 아니라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여서 공간을 만들고" 북미대화를 성사시키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북한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과의 관계를 넓혀가고 있다. 우리는 그 움직임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다. 북중·북러 관계의 변화를 냉정하게 읽으면서 그 속에서 한반도 평화의 공간을 만들어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평화는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움직여야 길이 열린다.
길이 열리기 전에 사람을 준비해야 한다
그 준비는 외교에만 있지 않다. 남북의 문이 다시 열린다고 곧바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80년 가까운 분단의 시간 동안 남과 북은 너무 다른 사회가 되었다. 사용하는 말도, 살아가는 방식도,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그래서 나는 물리적인 길을 잇는 것만큼 '사람의 길'을 잇는 준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외부와 연결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북한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북한 주민을 만났을 때 그들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교류가 시작됐을 때 함께 일하고 소통할 사람들은 준비되어 있는가.
정부의 정책만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사회 곳곳에서 북한 사람들과 함께 일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남과 북을 모두 경험한 북향민들의 경험도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길이 열린 뒤 사람을 찾기 시작하면 늦는다. 길이 열리기 전에 사람을 준비해야 한다.
나는 아직 연결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 단동호텔에서 찍은 사진 아침에 신의주쪽을 향해 찍은 사진입니다
ⓒ 박예영
지난해 단동에서 신의주를 바라보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1997년 처음 고향을 떠나 중국에서 3년간 사는 동안에도 수없이 고향의 가족들과 연락하고 싶었고, 만나고 싶었고, 돕고 싶었다. 북송되어 어려움을 겪었는데도 고향은 여전히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그곳에는 내가 살아온 시간과 가족, 고향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러나 더 큰 이유가 있다. 아직도 그곳에는 바깥세상을 자유롭게 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해 단동에 서서 단동과 신의주를 잇는 다리만이라도 다시 열리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1년 뒤, 오랫동안 멈춰 있던 신압록강대교가 다시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얼마나 감격스럽겠는가.
2000년 나를 북한으로 데려갔던 압록강의 다리와 지금 새롭게 이어지고 있는 신압록강대교는 서로 다른 다리다. 그러나 내게 두 다리는 한 가지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앞으로 이 길을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
사람을 끌고 가는 길이 아니라 사람이 만나러 가는 길이었으면 좋겠다. 서로를 감시하고 경계하는 길이 아니라 물건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길이었으면 좋겠다. 역사는 직선으로 전진하지 않는다. 때로는 후퇴하고 멈춘다. 그러나 다 끝났다고 생각한 자리에서 다시 움직이기도 한다. 26년 전 두려움 속에서 압록강을 건넜던 나는 이제 그 강에 놓인 또 하나의 다리가 다시 이어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래서 나는 아직 '연결'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다리가 있다는 것은 언젠가 누군가 건널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박예영 작가는 남과 북에서 생의 반씩을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북향민의 삶과 정체성, 사회통합과 ‘사람의 통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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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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