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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유나유 작성일26-10-01 02:01 조회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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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보여주는 건 어떤 흐름도 직선적인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상승과 하강의 흐름 속에서 출렁거리고 때로는 용솟음치기도 한다 절정이 있으면 환멸은 필연적이다. 그럼에도 멀리 떨어져서 보면 장기 우상향 곡선을 만들어온 것이 지난 백년 우리 공동체의 역사적 흐름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하곤 한다. 지나고 나면 모두 다 별것 아니다. 그렇게 공동체의 자기 서사가 만들어질 것이다 1. 현대 드라마 구성 원리로 널리 알려진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틀이 있다. 이는 유럽 고전극의 5막 구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고전 드라마에서 절정은 중간에 있었지만 현대로 올수록 절정은 뒤로 밀리고 결말은 짧아진다. 이 원리를 잘 지키기로는 할리우드 영화의 표준 문법을 따라갈 것이 없다. 예쁜 여자와 잘생긴 남자가 결합하기 위해서는 오해의 강을 건너야 하고, 용감한 주인공이 영웅이 되려면 강력한 악당의 도전을 넘어서야 한다. 절정이 만들어지기 위해 위기는 필수적이다. 드라마가 아니라 사람들의 진짜 삶은 어떤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 키스를 나눈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그것이 보통 사람들의 삶이다. 영화나 드라마는 그저 짧은 환희의 순간을 잡아낼 뿐이다. 실제 삶의 경험은 영웅 탄생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후일담에 가깝다. 우리 대부분의 삶은 절정의 순간 이후에도 지속돼야 하는 까닭이다. 개인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서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환멸을 통과하는 방법이 문제가 된다. 브람스도 톨스토이도, 공동체의 자기 서사도. 2. 절정 이후의 삶에 대해 상기시켜준 것은 브람스였다. 지난 4일, 수원시향이 브람스의 피아노협주곡 1번과 교향곡 1번을 연주했다. 그날 내게 다가온 브람스는 그 자신이 절정 이후를 살아내야 했던 인물임을 보여주었다. 교향악단의 연주회에 간 것은, KBS교향악단 정기 연주회를 쫓아다녔던 1982~1983년 이후로 거의 처음이니 실로 오랜만이었다. 내게 서양 고전음악은 주로 읽기와 쓰기 작업을 위한 배경음악 구실을 해왔다. 몇달씩 같은 음악만 틀어놓기도 하니, 음악이라기보다 소리에 가깝다 해야 하겠다. 릴게임정글북 각 잡고 음악을 듣던 20대 초반에도 관현악곡은 주로 베토벤과 말러였다. 요컨대 내게 브람스는 20대 초반에 잠시 스쳐간 작곡가였고, 이번 콘서트의 음악들도 지난 45년 내 청음 목록에서 지워진 것들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콘서트홀에서 만난 브람스는 놀라운 존재로 다가왔다. 작업을 위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객석에 앉은 내게 정면으로 박두해오는 소리라서 그랬을까. 1982년에 맛보던 연주회의 기본 틀은 서곡과 협주곡, 그리고 교향곡의 순서였다. 이번 브람스 연주회는 서곡 없이 피아노협주곡과 교향곡뿐이었다. 이유는 대개 짐작할 수 있었다. 피아노협주곡의 연주 시간이 55분, 1악장만 해도 30분이었다. 30분이면 보통 협주곡 전체가 연주될 시간이었다. 게다가 피아노협주곡인데도 구성과 음량에서 관현악이 압도적이었다. 이게 대체 뭔가 하는 느낌이었다. 교향곡 1번이 시작되자 이런 의아함이 해소되기 시작했다. 음률의 진행이 베토벤의 교향곡과 유사하게 느껴졌고, 귀에 익은 베토벤의 선율들이 간간이 흘러나왔다. 어느 순간 나는 알게 됐다. 1833년생 브람스는 자기보다 예순세 살이나 많은 베토벤과 씨름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 영향의 불안에 시달리며, 베토벤이 만들어놓은 관현악의 만리장성을 넘어서려 안간힘을 쓰는 중이라는 것, 그 결과가 무려 1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을 지닌 기형적인 피아노협주곡 1번이자, 40대에 이르러 가까스로 완성한 교향곡 1번이라는 것. 베토벤은 서양 음악사에서 고전주의 양식의 완성자이며, 고전 음악의 호수 같은 존재라는 .에서 동갑내기 철학자 1770년생 헤겔과 같은 위상을 지닌다. 근대성의 이념으로 보자면 1769년생 나폴레옹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근대성의 이념이 만들어낸 절정이자 새로운 출발.에 해당한다. 현재 시.으로 보자면 그저 멀리 있는 봉우리에 해당하지만, 그 우람한 봉우리 바로 밑에서 자기 작업을 시작해야 했던 사람이라면 절망적이지 않을 수 없었겠다. 그날 저녁, 수원시향 팀파니의 포효가 유독 강렬하게 다가왔던 까닭이 없지 않았던 것이겠다. 3. 고전릴게임 톨스토이에게 심각한 허무감과 강렬한 자살 충동이 찾아온 것은 1870년대 후반, 그의 나이 50을 전후한 시기였다. 그는 <전쟁과 평화>(1869), <안나 카레니나>(1877)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후의 일이었다. 명예와 부, 안정된 가정이라는 。에서 모자람이 없는 상태였다. <참회록>(1882)에서 그는 죽음이 두려워 집 안에 있는 사냥총과 밧줄을 치워버렸을 정도였다고 썼다. 그 기록에서 무엇보다 생생한 것은 인간 삶의 비관적 우화이다. 한 사람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꿀맛을 보고 있다. 꿀맛이 환상적이라고 탄성을 지른다. 그런데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카메라가 뒤로 물러서면 그의 절박한 상황이 펼쳐진다. 그가 지금 있는 곳은 마른 우물 속이다. 우물 위에서는 성난 코끼리가 포효하고 있고, 저 밑에 우물 바닥에는 독사와 지네가 꿈틀거린다. 맹수를 피해 마른 우물로 뛰어들었는데 하필 밑바닥이 그 모양이다. 그래도 매달릴 나뭇가지가 있었던 것이 어디냐고 한숨 돌리는데, 이번에는 우물 벽에서 하얀 쥐와 검정 쥐가 번갈아 나와 나뭇가지를 쏠아댄다. 시간이 지나면 나뭇가지가 끊어지고 그는 지네와 독사들의 땅으로 가야 할 것이다. 허공에서 떨어지는 꿀이 뺨을 스친다. 꿀맛이 좋다. 너무나 좋다. 이것은 톨스토이가 동양의 한 경전에 나오는 우화라고 인용한 것이다. 하얀 쥐, 검정 쥐란 낮과 밤으로서 시간의 흐름을 뜻한다. 허공에도 바닥에도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조금 이른 죽음과 늦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꿀을 빨고 있어야 하나. 조금 더 버틴다고 뭐가 달라지나. 논리적으로 보자면 자살이 답이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아득바득 애쓰지 말고 그저 목숨을 끊는 것이 답이다. 그것이 동서고금의 논리 창고를 뒤진 끝에 톨스토이가 도달한 귀결이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가. 왜 톨스토이는 자살하지 않았는가. <참회록>에 따르면, 삶을 유지하는 것은 논리나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함이 그 답이다. 뭔가를 바꿔야 한다면 생각이 아니라 몸을 바꿔야 한다는 것,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답은 이성이나 지식이 아니라, 실천과 지혜의 차원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그는 신앙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지만, 그것이 당시의 러시아 정교 같은 제도화된 종교에 의지하자는 뜻이 아님은 물론이다 바다이야기 먹튀 신고 . 오히려 위선과 탐욕의 화신이 된 실정 종교는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의 <참회록>이 판매 금지를 당하고 그가 마침내 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한 것은 그런 까닭이다. 브람스가 자기 외부에 있는 절정 앞에서 괴로웠다면, 톨스토이는 자기가 만들어낸 절정으로 힘들었던 사람이다.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가. 특별한 방법이 있을 수는 없다. 새로운 몸의 흐름을 만들어가며 갈 데까지 가보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베토벤이 아닌 브람스의 세계이고,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부활>의 세계이다. 4.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 라이프니츠에서 다윈으로 이어지는 자연철학의 근간이 되는 명제다. 비약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사람들의 마음은 쉽게 도약하고 거꾸러진다. 같은 일에 대해서도 희망과 절망이 극단적으로 교차한다. 하지만 몸과 마음의 흐름은 산책하는 사람과 개의 관계와 같다. 이리저리 날뛰어도 마음은 결국 비약 없는 몸의 흐름으로 수렴된다. 공동체도 몸을 지닌다. 역사가 공동체의 몸이다. 우리 모두는 죽음에서 와서 죽음으로 간다. 도약을 향한 내재적 의지가 있을 때 예외상태로서의 삶이 생겨난다.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거쳐온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어떤 흐름도 직선적인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상승과 하강의 흐름 속에서 출렁거리고 때로는 용솟음치기도 한다. 절정이 있으면 환멸은 필연적이다. 그럼에도 멀리 떨어져서 보면 장기 우상향 곡선을 만들어온 것이 지난 백년 우리 공동체의 역사적 흐름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하곤 한다.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니다. 그렇게 공동체의 자기 서사가 만들어질 것이다. ▲서영채 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 아시아 언어문명학부 및 비교문학 협동과정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4년 계간 ‘문학동네’를 창간하여 2015년까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한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지냈다. 한국 문학과 세계 문학, 인문학에 관한 글을 쓴다. <동아시아 비교문학> <우정의 정원> <왜 읽는가> <풍경이 온다> <죄의식과 부끄러움> <인문학 개념정원> <미메시스의 힘> <아첨의 영웅주의> <문학의 윤리> <사랑의 문법> <소설의 운명> 등의 책을 썼다. 서영채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사람들의 진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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