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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성원성 작성일26-09-26 07:32 조회1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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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북동쪽 끝,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물길을 바라보는 곳에 월곶이 있다. 예부터 이곳은 물길의 길목이자 군사적 요충지였다.
더리미미술관의 '침묵의 돈대 : 세계유산을 꿈꾸다' 답사 프로그램에 참여해 갑곶돈대를 둘러본 뒤, 황평우 교수의 안내를 따라 월곶돈대로 향했다. 황 교수는 동국대에서 강의하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문화유산 전문가다.
월곶돈대에 들어서기 전 먼저 만난 곳은 조해루(朝海樓)였다. 월곶진의 문루였던 조해루는 이름 그대로 '아침 바다를 맞이하는 누각'이라는 뜻을 지녔다.
▲ 월곶진의 문루였던 조해루. '아침 바다를 맞이하는 누각'이라는 뜻을 가졌다. 완만한 언덕 위에서 월곶돈대와 강화를 든든하게 지켜서 있다.
ⓒ 전갑남
황 교수는 조해루 주변의 돌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물길을 따라 쌓은 석축의 돌 가운데에는 옛 성곽이나 돈대에서 옮겨온 것으로 보이는 돌들도 있다는 것이다. 무심히 지나쳤다면 그저 오래된 돌로만 보였을 것들이었다.
돌 하나에도 저마다 사연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우리는 조금 언덕을 올라 월곶돈대의 문 앞에 섰다. 여느 돈대에서 보는 출입문과는 다른 모습이다.
일행 중 누군가가 황 교수에게 물었다.
"여기는 홍예문 형태네요. 아치형으로 만든 문이 네모난 문보다 더 튼튼한가요?"
황 교수는 홍예문이 위에서 내려오는 무게를 양쪽으로 분산시키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아치형 문을 만들려면 돌을 일정한 형태로 다듬고 서로 맞물리게 쌓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월곶진에 있는 월곶돈대의 문. 굳건하게 다듬은 돌을 다듬어 아치형으로 쌓아 올린 성문이다. 단단한 성곽 축조 기술과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준다.
ⓒ 전갑남
돌 하나하나를 바라보니, 지금은 단순해 보이는 성문에도 당시 사람들의 축성 기술과 지혜가 담겨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고려의 옛 정자, 조선의 호국 성곽을 품다
월곶돈대를 둘러보다 성벽 너머로 연미정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궁금해졌다.
"연미정은 정자가 먼저였을까요, 돈대가 먼저였을까요?"
황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연미정의 유래는 돈대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고려시대부터 이곳에 대한 기록이 전해지며, 고려 고종 때 구재(九齋)의 학생들이 이곳에 모여 공부했다는 기록도 있다.
현재의 연미정이 고려시대 건물 그대로 남아 있다는 뜻은 아니다. 고려시대부터 이곳에 정자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있고, 현재의 건물은 후대에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
▲ 수령 수백 년의 느티나무와 호국 성곽 속 연미정. 높은 추춧돌 위에 올려진 나무기둥과 우아한 처마 선이 자연 축대 및 성곽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고려시대의 정자가 조선시대 호국의 석성을 옷처럼 입고 조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풍경이다.
ⓒ 전갑남
반면 월곶돈대는 조선 숙종 5년인 1679년에 축조되었다. 그러니 굳이 순서를 따진다면 정자의 유래가 먼저이고, 돈대는 훗날 그 주변을 지키기 위해 들어선 셈이다.
한곳에 자리한 두 공간이지만 품고 있는 시간이 다르다. 연미정은 고려시대부터 이어진 풍류와 역사의 공간이고, 월곶돈대는 조선 후기 국방체계 속에서 만들어진 군사시설이다.
▲ 선자연 기법이 돋보이는 연미정의 건축 구조. 부채살처럼 펼쳐진 서까래와 견고하게 짜 맞춰진 보, 우물 천장의 목조 건축미가 고풍스러운 멋을 더한다.
ⓒ 전갑남
연미정에 올라서니 높은 주초석 위에 세운 정자의 모습이 단정하다.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이 돌로 쌓은 성곽과 묘하게 잘 어울린다.
정자 앞에 서자 시야가 시원하게 트였다. 한강과 임진강이 합쳐진 물줄기가 이곳에 이르러 다시 두 갈래로 나뉘어 흐른다. 이 일대의 물길을 조강(祖江)이라 부른다.
연미정이라는 이름도 물길이 제비 꼬리처럼 갈라지는 모습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한양으로 향하던 배들이 이곳에서 물때를 기다리기도 했다.
정자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니 물길과 산하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평온해 보이는 이곳이 과거에는 사람과 물자가 오가던 중요한 길목이었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조강(祖江)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 유도
그런데 조강의 물길 한가운데에 작은 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유도(留島)였다.
▲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합쳐져 서해로 흘러가는 물길과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에 유도가 있다.
ⓒ 전갑남
연미정에서 바라보는 유도는 그저 한 。의 섬처럼 보이지만, 분단의 현실을 품고 있는 곳이다. 지금은 무인도로 남아 있지만, 1996년 여름 북한에서 떠내려온 소 한 마리가 이 섬에서 발견됐다. 이듬해 1월 우리 군의 구조작전으로 소를 구해내면서 이른바 '평화의 소'로 알려진 사연이다.
유도를 지그시 바라보며 생각한다. 저 작은 섬 하나에도 남과 북이 마주한 세월과 평화에 대한 바람이 함께 담겨 있구나.
강 너머 가까이 바라보이는 북한 개풍군의 산하와 유도, 그리고 그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조강. 정자 난간에 기대어 바람을 맞노라니, 옛 선비들이 시를 읊던 풍류와 나라를 지키던 군사들의 숨결이 겹쳐지는 듯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역사의 자리에 연미정이 남아 있다.
정묘호란의 아픔을 넘어 오늘에 전하는 역사의 울림
연미정은 아름다운 풍광만 간직한 곳이 아니다. 조선 인조 5년인 1627년 정묘호란 때 후금 사신을 맞이하고 양국의 교섭이 이루어진 역사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나라의 운명이 흔들리던 시기에 이곳에서 후금과의 화친을 둘러싼 교섭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 눈앞에 펼쳐진 평온한 풍경이 새롭게 다가온다.
당시 이곳을 오갔던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전쟁의 긴장 속에서 협상을 이어가던 사람들과,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했던 백성들의 모습이 잠시 떠오른다.
▲ 월곶돈대의 여장과 느티나무, 연미정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연미정 앞, 제비꼬리처럼 갈라진 물길을 따라 돛단배들이 한가로이 포구로 돌아오는 풍경은 예부터 강도팔경의 하나로 손꼽혔다.
ⓒ 전갑남
한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사들이 성벽을 오르내렸을 월곶돈대와,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곳에 자리했던 연미정. 정자는 풍류를 품었고, 돈대는 나라를 지켰다. 그러나 연미정 역시 전쟁과 외교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자리였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온 두 공간이 한자리에 남아 수백 년의 세월을 함께 견뎌온 것이다.
오늘 우리가 바라보는 연미정의 고요한 풍경도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의 발길과 역사의 굴곡을 지나 오늘에 이른 풍경이다.
연미정을 뒤로하고 다시 홍예문을 나선다.
세월을 견뎌온 돌 성벽과 단정한 연미정의 처마, 그리고 그 곁을 말없이 흐르는 조강. 홍예문을 빠져나오는 발걸음 끝에 월곶돈대의 돌담과 연미정의 처마, 조강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 유도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in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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