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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성원성 작성일26-09-17 06:06 조회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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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택'은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혼자 살고 있다. 아내 '현숙'과는 도장만 찍지 않았을 뿐 별거한 지 오래다. 교장 선생님으로 퇴직한 현숙은 유유자적 인생을 즐기는 중이다. 둘 사이엔 무남독녀 '정미'가 있다. 단역을 전전하면서도 연기의 꿈을 놓지 않는 딸은 독립해 살면서도 아빠와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다. 술과 담배를 놓지 않던 철택은 암 선고를 받고 투병을 개시하고, 정미는 그런 아빠 수발에 정신이 없다. 하지만 딸의 헌신에도 철택은 투정을 부린다.
▲ <철들 무렵> 스틸
ⓒ 인디스토리
한국 현대 가족영화의 비범한 변주
추석 명절이 다가온다.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과 친지가 1년에 한두 번 상봉할 시간이다. 부푼 기대로 오랜만에 재회하지만, 적잖게 다툼을 벌이거나 마음을 다쳐 차라리 안 만난 게 나았을 난국에 빠지기도 한다. 더불어 세대가 바뀌면서 가족 간의 유대감은 。. 희미해지는 추세다. 대세는 거스를 수 없다. 이해타산 계산이 유대감과 상호부조를 대체하며 이익 공동체로만 남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 가운데 현대 가족의 미래는 불확실한 궤도로 진입했다.
게다가 타국과 비교해도 압축 성장과 이식된 근대성을 겸비한 한국 사회의 과잉 속도감은 가족 구성원 내에서도 세대 갈등을 당연한 듯 형성한다. 조부모는 일제강。기에서 한국전쟁과 절대 빈곤을 체험한 세대, 부모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겪었고, 자녀는 1997년 국가 부도와 비정규직 심화를 경험하며 세대 간 이질감은 심화 일로다. 그야말로 추석 연휴에 모인 대가족은 사회의 축소판이자 작금 대한민국이 겪는 혼란의 배경으로 완벽한 조합인 셈이다.
<철들 무렵>은 그런 세태를 포착한 한국 영화의 또 다른 변주로 읽힐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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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다양한 시도에 이미 익숙해진 관객에겐 대충 이런 내용이겠지 하는 선입견을 부르기 딱 좋은 도전. 하지만 굳이 영화를 소개하려는 데엔 나름대로 명분과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그만큼 특별한 개성과 더불어 여타 시도와 차별화한 미덕으로 채워진 영화다. 무엇보다 느슨해질 틈 없이 재미있다. 그러면서도 사회학 교재처럼 시대상을 진단하는데 유용한 참고가 되어준다. 어떻길래?
사건과 갈등의 주축은 철택과 정미 부녀다. 둘 다 주변에서 쉽게 '철이 없다'고 취급할 구석을 가진 인물이다. 아빠는 번듯한 명문 대학교 출신인데도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현숙과의 관계도 파경으로 끝났다. 딱히 모아둔 돈도 없고 노후 대책 하나 세운 게 없다. 건강도 영 챙길 생각이 없던 그에게 어느 날 불쑥, 하지만 누구에게나 별안간 내려앉을 불운이 깃든다. 제 한 몸 건사는 알아서 하던 삶이 순식간에 뒤집힌다.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혈육의 정을 무력화하는 '돌봄'의 무게
▲ <철들 무렵> 스틸
ⓒ 인디스토리
이럴 때 손을 벌리라고 가족을 꾸린 것 아니냐 할 상황. 아빠는 딸에게 상황을 알릴 수밖에 없다. 딸은 한달음에 달려온다. 여기까진 당연한 경과다. 게다가 '철없는' 아빠를 헤어진 엄마 대신 챙기는데 어지간히 이골났는지 정미의 대처는 제법 능숙하다. 철택이 손댈 것 없이 척척 자식 돌보듯 아빠의 병원 수속을 처리 해댄다. 얼핏 부녀 구도가 뒤집힌 듯하다. 그렇게 투병 생활이 시작된다.
낯선 병원 생활이 편할 리 없다. 옆 침대 환자는 여긴 다들 암 말기라며 '송장 대기소'나 다를 게 없다는 소리로 철택을 질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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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으론 애써 태연한 척, 의연하게 행동하려 해도 그게 마음처럼 될 턱 없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던 중년 남자는 순식간에 아이처럼 고집을 부리며 주변을 괴롭히지만, 한편으론 도움을 간절하게 청하는 중이다. 딸은 그런 아빠의 약한 모습을 목격하고 감당해야 한다. 그래도 여태 보여준 모습만 보면 든든한 자식이다.
그런데 정미의 삶도 녹록하진 않은 게 문제. 독립해서 생활하며 '캥거루족' 사회문제를 틈만 나면 단골로 보도하는 미디어 떠올리면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는 대견한 자식의 표본 같지만, 장래가 불확실한 연기자의 길을 걸으며 마음은 미래의 명배우, 현실은 출연해도 알아보기도 힘든 무명 단역배우의 삶이다. 당연히 제 한 몸 부지하기도 근근한 형편. 여기에 철없는 아빠가 키워준 은혜 수금이라도 하려는 듯 끼어든다. 물론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사이긴 하다.
자기 일도 바쁜데 아빠 간병하느라 이제 딸은 제대로 잠도 못 자는 신세다. 시한부 인생이 사방에 가득한 다인 병실에서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의지해 새우잠 자는 것도 하루이틀이다. 병원 생활해 보면 누구나 실감하는 풍경, 밤에도 수시로 들락거리며 환자 상태를 확인하는 의료진, 옆에서 신음하며 끙끙 앓는 환자의 소음은 악몽 같은 스트레스다. 물론 병든 아빠를 돌보는 데 가족이라면 감수해야 한다고 믿는 효심 지극한 딸이긴 하지만, 이것도 하루이틀이다.
요절복통 슬랩스틱과 묵직한 고찰 사이
▲ <철들 무렵> 스틸
ⓒ 인디스토리
영화는 병원에서 부녀가 지내는 시간을 일별로 화면에 표기한다. 누구나 날짜가 늘수록 가슴이 철렁해지며 불길한 예감에 자기 일처럼 속이 답답해질 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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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3주를 훌쩍 넘겼다. 경험자라면 이쯤 되면 몸도 마음도 소진된 상태임을 쉽게 짐작할 시기. 게다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병원비 중간 정산하라고 원무과가 독촉할 딱 그 타이밍이다. 그야말로 고립무원, 사면초가 지경에 처한 정미다. 그런 딸의 속을 박박 긁는 건 대책 없는 아빠의 천하태평과 억지다.
물론 아무리 철없는 아빠라도 속 편할 리 없다. 하지만 아빠 체면에 센 척해 보다가, 마음 약해지면 또 정미에게 은근슬쩍 매달리며 의지한다. 처음엔 아빠를 애처롭게 바라보며 동정하는 딸이지만, 시일이 지날수록 밉상으로만 보일 게 뻔하다. 내가 해결한다! 호언장담하다 딸에게 큰아빠한테 연락 한번 해보라고 슬며시 권유한다. 자신은 절대 전화 한 번 할 생각이 없다. 결과적으로 아쉬운 부탁은 몽땅 정미 몫으로 전가된다. 그녀라고 편할 리 없는 일인데.
하지만 형제 관계는 썩 원만하지 않다. 게다가 큰아빠 역시 형편 좀 낫다 정도이지 평생 골칫덩어리로 치부해 온 동생이 마뜩하진 않다. 당장 돈 마련할 데 없는 정미는 결국엔 엄마를 찾을 수밖에 없다. 미워 죽을 철택이지만, 딸의 수난에 마음 약해진 현숙의 도움으로 급한 불은 끌 수 있다. 하지만 아빠의 노후를 겪으며 정미는 생각이 복잡해진다. 마침 주변 권유로 '효도 계약'을 해 상대적으로 넉넉한 엄마의 도움을 확보할 궁리를 해본다. 이게 맞나 싶긴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투병에 지치고 지난 삶이 허무해진 철택은 딸에게 투정 하듯 들볶기 시작한다. 돌봐준 것만 해도 고마워해야 마땅할 판에 역으로 '배은망덕' 표본을 벌이는 아빠에게 딸도 감정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다. 게다가 오래 준비한 오디션도 미끄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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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걷는 길이 과연 맞는 건지, 남들 하는 대로 취업하고 결혼하는 삶을 택해야 했는지 먹먹하기만 하다.
한 세기를 순환하는 거대한 풍경으로
▲ <철들 무렵> 스틸
ⓒ 인디스토리
철택의 형님 '광택'은 명문대 나와서 저 모양으로 산다며, 뭐라도 된 듯 세상 바꿔보겠다며 나섰던 동생을 비판한다. 그렇게 청춘 바쳤으면 뭐라도 되어야지, 챙길 거 챙긴 놈 숱한데 동생은 앞가림도 못한다며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반면교사로 자식과 손자에게 틈만 나면 들먹인다. 별것 아닌 듯해도 작금 우리 사회 내 극심한 이념 대립과 세계관 충돌을 압축한 풍경이다. 앞 세대 경험과 뒤 세대 변화를 아우르는 시선은 지금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바로 그것.
코믹한 기운에 감춰진 사회학 보고서의 향기는 .。 관객을 빨아들인다. 현숙은 우아한 싱글 라이프를 누리려 하지만, 구순 넘은 노모를 자식 중 하나가 돌봐야 한다는 형제자매들의 외압에 시달린다. 다들 돌볼 가족과 자식이 있는데 현숙만 홀로 여유롭지 않으냐는 명분이다. 기가 막히는 현숙이지만, 체면상 주변 눈치를 안 볼 수 없다. 그녀의 전원주택에서 벌어진 성대한 구순 잔치 이면엔 그런 치열한 가족 암투가 한창 벌어지는 참이다.
하지만 누구도 정작 노모 '옥남'의 의사는 묻지 않는다. 자식 된 도리와 세간의 시선에 좌우될 따름이다. 그런데 문제는 옥남의 뜻은 자식들의 통념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 주변 배경처럼 간간이 등장할 뿐이지만, 옥남이 어쩌면 긴 삶에서 처음 얻은 자유 속에서 본인의 지난 생을 회고하는 독백은 고난의 세월을 견딘 한민족 전체의 구술사 기록처럼 관객에게 도착하기 시작한다. 설정상 옥남과 동갑인 작가 박완서의 문장을 인용해 지난 세기를 회고하는 대목이다.
개그가 깨알처럼 툭하면 터지는 기본 축과 상호 보완 관계로 차분하면서도 묵직한 성찰을 제공하는 '한반도 역사상 최악의 세대' 생존기는 지난 시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겪어온 고난의 시간을 압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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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과 기아, 독재와 그에 맞선 투쟁 속에서 우리가 겪은 희생과 혼란의 의미에 대해 곱씹게 만든다. 어느새 풍요 속에 과거를 망각하는 세태 속 반가운 접근이면서도 복고주의와 과거 향수는 단호히 선을 긋는다. 사려 깊은 시선과 안배가 놀라운 경지다.
마치 영화에 수록된 한 편의 에세이를 듣는 체험은 가족 사이 갈등을 지켜보는 또 다른 세대, 광택의 손자가 대환장 사태를 응시하는 말 없는 시선과 상징적인 암시로 지층의 퇴적을 더 한다. 또 한 편의 탁월한 가족 풍자극이던 전작 <이장>에서도 미래 세대에 희망을 걸던 감독은 같은 맥락에서 후속 세대가 어떤 세상을 만들지 기대를 놓지 않으려 한다. 앞 세대가 돌아볼 겨를 없이 달려와 구축한 현재를 목격한 이들이 건설할 미래를 기대하는 기성세대의 믿음.
<철들 무렵>은 상영 시간을 대안적 가족관과 한국 사회 격동을 요약하는 성숙한 시선으로 가득 채운다. 이만하면 썩 훌륭한 가족 선물 세트가 아닐 수 없다. 웃고 떠들다가 문득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게 만들고, 명절에 모인 친지 사이 피하는 게 상책인 정치와 세대 이야기를 대안적으로 열게 돕는다. 참 오랜만에 온 가족과 세대가 함께 볼 수 있는 '대중 영화'가 우리 앞에 도착했다. 그것도 추석 대목 앞두고. 선택은 관객 몫이지만 놓치면 후회하리라 장담한다.
<작품정보>
철들 무렵
Coming of Age
2025 한국 K-철가루 가족극
2026.09.16. 개봉 105분 12세 관람가
감독/각본 정승오
출연 기주봉, 하윤경, 양말복
제작 주마등필름, ㈜인디스토리
배급 ㈜인디스토리
30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조합 플러스엠상, 송원 시민평론가상
28회 정동진독립영화제 땡그랑동전상
▲ <철들 무렵> 포스터
ⓒ 인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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