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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7월 27일 평양에서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73주년(전승절)을 기념하는 행진의식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8일 보도했다
북한이 노동당 규약에서 주한미군 철수 요구를 삭제했다. 수십 년간 되풀이해 온 대미 요구가 최고 규범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 대목만 떼어놓으면 북한이 주한미군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3일 공개한 노동당 규약 신구 조문 대비표를 따라가면 다른 장면이 나타난다. 2021년 규약은 남측에서 수행할 과제를 한 문단에 모아놓았다. "미제의 침략무력을 철거"하고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청산하며,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의 원칙에 따라 조국을 통일한다는 내용이었다.
2026년 2월 제9차 당대회에서 개정된 규약에는 이 문단을 대체하는 문장이 없다. '남조선', '조국의 평화통일', '통일전선', '민족대단결', '전국적 범위'가 사라졌고, 그 안에 들어 있던 주한미군 철수 요구도 함께 없어졌다.
철수 요구가 사라진 것은 미군에 대한 북한의 평가가 달라져서가 아니다. 남측을 통일의 대상으로 삼아 그 안에서 정치적 과업을 수행한다는 강령 전체가 폐기되면서, 주한미군 철수 요구도 설 자리를 잃었다. 북한은 주한미군을 남겨둔 것이 아니라, 그 철수를 요구하던 무대인 '남조선과 조국통일'을 규약에서 통째로 걷어냈다.
2018년 김정은의 말보다 무거운 삭제
북한 지도자가 주한미군 문제에서 유연한 태도를 보인 것이 처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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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직후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종전 선언을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동맹 약화와 연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당시에도 북한이 미군 주둔을 사실상 용인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3년 뒤 개정된 2021년 노동당 규약에는 주한미군 철수 요구가 그대로 남았다. 정상회담에서 내민 협상 조건과 노동당의 장기 강령은 별개였다. 김 위원장은 회담을 열기 위해 주한미군 문제를 뒤로 미룰 수 있었지만, 당의 목표에서까지 내려놓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순서가 반대다. 북미 또는 남북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주한미군 철수 요구가 규약에서 사라졌다. 2023년 말 김 위원장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선언한 뒤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 대남기구를 정리했고, 통일과 민족을 상징하던 시설과 표현을 지웠다. 2024년 6월 당규약에 두 국가 노선이 반영됐다는 사실은 정보당국을 통해 알려졌지만, 올해 2월 개정 사항까지 담긴 전문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문이 드러낸 변화는 단어 몇 개의 삭제에 그치지 않는다. 과거 규약에서 남측은 미국의 지배를 청산하고 내부의 민주화를 실현한 뒤 하나의 국가로 결합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는 조국통일을 위한 당의 과업이었다. 지금 규약에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수행할 통일 과업 자체가 없다.
북한이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을 위협으로 여기지 않게 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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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은 한미연합훈련과 미국 전략자산 전개를 여전히 적대 행위로 규정하며, 지난달 31일 외무성 담화에서도 미국의 대북 정책이 "보다 위험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미 대화가 열리면 연합훈련 축소나 전략자산 전개 중단을 다시 요구할 것이다. 달라진 것은 그 요구를 떠받치는 논리다. 남측에서 외세를 몰아내 민족통일을 이룬다는 장기 강령이 아니라, 서로 적대하는 국가 사이에서 군사적 위협을 줄인다는 협상 조건으로 바뀌었다.
주한미군 철수 요구의 삭제는 북한의 대미 적대감이 약해졌다는 증거가 아니라, 대미 군사문제가 '남조선 해방과 조국통일'의 일부에서 국가 간 안보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는 흔적이다.
통일을 지운 규약에 들어온 '전시'
이번 개정에서 함께 눈여겨볼 대목은 제15조다. 2021년 규약은 당 지도기관을 선거로 구성한다는 원칙을 뒀다. 개정 규약은 전시에 새로 임명된 당 책임일꾼이 선거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해당 지도기관의 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예외를 신설했다. 적용 대상은 전시에 임명되는 책임일꾼에 한정되므로, 지휘 공백을 막기 위한 조직 운영 조항으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그럼에도 통일 관련 문구가 빠진 규약에 전시를 전제한 당 운영 규정이 새로 들어갔다는 사실은 가볍지 않다. 북한은 남측을 내부 혁명과 통일의 대상으로 다루던 문장을 지우면서, 전쟁이 벌어졌을 때 당 조직을 어떻게 유지할지는 규약에 적어 넣었다.
이번 개정은 대남 노선뿐 아니라 김일성·김정일 관련 서술의 축소, 총비서 권능의 구체화, 입당 연령 상향 등 김정은 체제 전반을 손질한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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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규약이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하다. 남측은 함께 통일할 민족의 일부에서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외부 국가로 이동했고, 통일전선의 과업이 있던 자리를 유사시 당을 작동시킬 절차가 차지했다.
이 변화가 남북 관계를 덜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국가를 지향한다는 명분 아래 상대 체제를 무너뜨리려던 과거의 논리는 약해졌으나, 이를 대신할 국가 간 규칙은 마련되지 않았다. 북한은 대한민국을 별개의 국가라 선언하면서도 그 경계를 어디로 볼지, 우발적 충돌을 어떻게 막을지, 끊어진 군 통신선을 어떻게 복원할지에는 나서지 않는다.
한국도 이전과 같은 질문만 되풀이할 수는 없다. 북한이 통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서해와 비무장지대에서는 완충 장치 없이 두 군대가 맞선다. 북한의 두 국가론을 대한민국 헌법에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북한이 통일 강령을 폐기하며 생긴 현실까지 외면할 수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북한의 국가론을 승인하는 선언이 아니라, 군사적 경계를 관리하고 우발적 충돌을 차단하며 끊긴 연락선을 다시 잇는 절차다. 상대가 응하지 않는다면 남북기본합의서와 9·19 군사합의가 맡았던 안전장치부터 우리 손으로 복구해, 북한이 돌아올 협상의 틀을 미리 세워둬야 한다.
북한은 통일 문장을 지운 자리에 전시의 당 운영까지 계산해 넣었다. 그러나 새 규약 어디에도 충돌을 멈출 절차와 군사적 경계를 관리할 합의는 없다. 이 빈칸을 방치하면 '두 국가'는 평화 공존이 아니라 규칙 없는 적대로 굳는다. 지금 서울이 서둘러 채워야 할 문장이 바로 거기 있다.
2021년 규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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