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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성원성 작성일26-09-21 10:45 조회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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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삶도 그 무엇도 금세 진면목을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여행이 그렇습니다. 짧은 관광만으로 그 나라의, 좁게는 한 도시의 이야기를 느끼기란 어렵습니다. 때문에 오래 머물러야 진짜 얼굴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박미승 작가의 책 ‘안녕, 산티아고’는 3년에 걸쳐 순례길을 걸으며 남편의 투병으로 지쳐 있던 마음을 천천히 돌아봅니다.
여책저책은 긴 시간과 느린 걸음 속에서 그 땅과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만나는 저자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안녕, 산티아고
박미승 l 미다스북스
여행을 떠날 때 꼭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너무 오래 달려온 삶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길을 나서기도 한다. 박미승 작가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이 그랬다. 남편의 오랜 투병을 곁에서 지켜보며 하루하루를 살아온 그는 2023년 늦가을 처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낯선 길 위에서 삶을 다시 바라본 뒤 해마다 그 길로 향했다. ‘안녕, 산티아고’는 그렇게 3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 올린 한 사람의 느린 여행 기록이다.
빠르고 복잡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속도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해야 할 일과 맡은 역할에 치이다 보면 정작 ‘나’를 돌볼 시간은 뒤로 밀린다. 작가 역시 그랬다. 남편의 치료를 곁에서 지키고, 일터인 카페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볼 여유를 갖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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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산티아고에서 세운 다짐은 의외로 단순했다. 오로지 이곳에서는 그저 행복하자는 마음만 가지려 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걷고 싶을 때 걸었다.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애썼던 시간과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부딪혀온 날들을 잠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마음껏 단순해지고 솔직해지기로 마음 먹었다.
포르투갈 길을 걷는 여정은 화려하지 않다. 배낭은 무겁고 발바닥에는 물집이 잡힌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낯선 도시를 지나야 하고 때로는 두려움 앞에서 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그 투박한 불편함이 여행의 감각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걷고, 멈추고, 다시 바라보는 동안 평소에는 지나쳤을 작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닷바람의 온도, 골목의 풍경, 잠시 내리는 빗방울, 길 위에서 만난 사람의 미소가 모두 특별한 기억이 된다.
포르투는 작가에게 특히 인상적인 도시다. 푸른 하늘과 강, 벽을 가득 채운 파란 타일이 어우러진 풍경 속을 걸으며 그는 ‘달력 속 사진 같은 풍경’을 온몸으로 만난다. 그리고 길을 걷는 순간마다 마음속에 새로운 용기를 채운다.
여행은 그렇게 조금씩 작가의 시간을 바꾼다. 목적지를 향해 서둘러 가는 대신 지금 걷고 있는 길을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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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빨리 도착했는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여행의 의미를 더한다. 십자가 앞에서 손을 모으고, 낯선 순례자와 눈을 마주치며 “부엔 까미노(Buen Camino·좋은 여행길 되세요)”라고 인사를 나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같은 길 위에서는 잠시 동행자가 된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닿는 순간이 있다.
책의 4장 제목은 ‘쉼표’다. 쉼표는 문장을 끝내지 않는다.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이어갈 뿐이다. 작가에게 산티아고의 시간 역시 그랬다. 삶에서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다시 걸어가기 위한 시간이었다.
남편의 투병이라는 현실은 길을 떠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긴 시간을 함께 살아온 사람의 마음에는 하루하루의 소중함이 더욱 선명하게 남는다. 작가는 특별한 날보다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 하루가 얼마나 귀한지, 곁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깊은 사랑인지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산티아고 여행은 현실에서 도망치는 일이 아니다.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에 가깝다. 걷는 동안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는다.
책에는 현장감 있는 사진과 재치 있는 일러스트, 여행지에서 건져 올린 문장들이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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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에는 포르투갈 길을 비롯해 프랑스 길, 은의 길, 북쪽 길, 프리미티보 길 등 주요 순례길과 준비물, ‘길 위에서 배우는 열 가지 마음’도 담았다. 산티아고를 처음 꿈꾸는 독자에게 실질적인 길잡이가 되는 이유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매력은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까지 걸었는지를 알려주는 데 있지 않다. 그 길을 걷는 동안 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다시 바라보게 됐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빠르게 살아야 한다는 세상의 목소리 속에서 우리는 늘 더 빨리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천천히 걷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바라볼 수 있다. 멈춰 선 사람이 오히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더 정확히 알 수도 있다.
이 책은 순례길을 걷고 싶은 사람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일과 역할에 지쳐 ‘나’를 잊은 사람, 잠시 쉬어갈 곳이 필요한 사람, 자신의 속도로 삶을 다시 살아보고 싶은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여행 에세이다. 산티아고에서 작가는 길의 끝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다시 걸어갈 마음을 얻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발견한 것은 특별한 삶이 아니었다.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 있는 지금의 삶이었다.
※ ‘여책저책’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세상의 모든 ‘여행 책’을 한데 모아 소개하자는 원대한 포부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출판사도 좋고, 개별 여행자의 책도 환영합니다. 여행 가이드북부터 여행 에세이나 포토북까지 어느 주제도 상관없습니다. 여행을 주제로 한 책을 알리고 싶다면 ‘여책저책’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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